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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부여 부소산성 백마강변 고란사(皐蘭寺)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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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10.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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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고란사 가는 길
▲ 부소산성 고란사 가는 길


부소산 산책로를 걷는 등산객
▲ 부소산 산책로를 걷는 등산객


낙화암 위에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백화정
▲ 낙화암 위에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백화정


백화정에서 본 소나무, 안개가 끼어서 백마강은 보이지 않는다.
▲ 백화정에서 본 소나무, 안개가 끼어서 백마강은 보이지 않는다.


백화정에서 고란사 가는 내리막 길
▲ 백화정에서 고란사 가는 내리막 길


고란사 전경
▲ 고란사 전경


고란사 주불전 극락전
▲ 고란사 주불전 극락전


고란사의 주불(가운데 아미타불, 좌측 대세지보살, 우측 백의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한다.
▲ 고란사의 주불(가운데 아미타불, 좌측 대세지보살, 우측 백의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한다.


고란사 벽화 : 백제말 나당 연합군에 궁궐은 불이타고 궁녀들은 백마강에 투신하는 모습을극락전 벽에 그린 그림. 사실 이 그림은 삼천궁녀가 투신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 고란사 벽화 : 백제말 나당 연합군에 궁궐은 불이타고 궁녀들은 백마강에 투신하는 모습을극락전 벽에 그린 그림. 사실 이 그림은 삼천궁녀가 투신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것이다.


고란사 극락전 뒤편에는 바위 틈에서 약수가 나오는데, 그 약수에 대한 설명
▲ 고란사 극락전 뒤편에는 바위 틈에서 약수가 나오는데, 그 약수에 대한 설명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가을이 저무는 11월 중순, 백제의 마지막 도성이었던 부여를 찾았다. 부여는 백제의 도성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흔적은 그리 많지 않다. 궁궐이 있었던 읍내에는 궁궐터도 찾지 못한채 궁궐 앞에 있었던 연못만이 궁남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궁남지란 고유명사가 아니라 궁궐의 남쪽에 있었다는 못이라는 뜻의 명사로 보통명사에 가깝다. 부여는 규모가 작은 지방자치단체로 주변의 많은 자치단체들이 시로 승격되었으나, 아직도 인구가 적어 여전히 부여군으로 남아있다.


부여를 찾아  아침에 궁남지 주변에 피어난 국화꽃을 보고 읍내 큰 절이었던 정림사터오층탑과 정림사터 박물관을 돌아보고 하루를 묵은 뒤, 다음날 새벽에 부여 북쪽을 감싸도는 백마강변의 부소산성을 올라 부여의 가을을 느껴본다.


백마강이 감아도는 부여읍내 잔뜩 낀 새벽 안개길을 헤치고 부소산 입구에 도착하여 부소산을  오르다 보니, 아침 햇살에 안개는 점차 가시고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길을 돌아 1.2km를 따라가면 백마강변에는 백제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애닯은 전설의 백화정이 있고 그 백화정에서 내리막길로 300m를 더 가면 북쪽 백마강가에 작은 절 고란사가 있다.


고란사는 백제시대 말기부터 있었던 절로 추정하나 그 확실한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절 안내문에 따르면 고란사라는 절의 이름은 절 뒷편 암반에서 감로수가 솟아나는 암벽근처에 자라는 습지 식물인 고란초에서 온 것이라고 하며, 백제시대부터 본래 있던 절의 전각은 언제 사라진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고, 현재의 극락전은 정조 21년(1797)에 근처 은산의 숭각사 전각을 백마강 뱃길로 이전하여 이곳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고란사를 오르는 길에는 부소산 산책로를 따라 오르다 백마강이 보이는 북쪽 절벽 암벽에 백화정(육각정)이 있는데, 백화정의 기초가 되는 암벽을 우리는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른다. 낙화암이라는 바위는 백제말 나당 연합군에 쫓기던 부여의 궁녀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떨어졌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어 애절하기 그지 없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때 꽃처럼 떨어져 죽은 궁녀들이 3,000명이나 되었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전하여, 당시 왕이었던 의자왕은 수없이 많은 궁녀들만 끼고 놀며 주색잡기에 몰두하다 나라를 망친 임금으로 매도 되기도 하였다. 의자왕(義慈王)이라는 시호는 의롭고 자비로운 성군이라는 뜻인데...


낙화암 위에 세워진 백화정의 이름은 중국 당나라시절 시인으로 유명한 소동파(蘇東坡)가 혜주로 귀양을 갔을때 성밖의 서호(西湖)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취한 것으로 이 건물은 1929년 일제강점기 당시 군수였던 홍한표의 발의로 군민들이 돈을 모아 지어진 것이다. 낙화암 절벽 위에 세워진 백화정에서는 백마강의 풍광이 잘 보였는데, 이제는 암벽 주변에도 소나무가 많이 자라서 백마강도 훤하게 보이지 않는다.


아침 안개가 강변에 피어나 그나마 백마강의 모습도 보지 못한채 돌아서는 기자는 백마강 변 고란사극락전에 들러 법당에서 삼배를 하였다. 극락전의 부처님은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란사의 부처님과 보살님은 무심한듯 법당에 들어 절하는 기자를 말없이 굽어만 보고 있다. 정복에 의해서 사라지고만 아픈 역사의 기억 때문인지 백제지역을 돌아보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아련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1357년 전에 산화한 백제의 영령들이시어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 백제의 후손들은 그 슬픔을 간직한채 지금도 의연하게 살고 있음이 그래도 다행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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