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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일불회 하동 대성사에서 지관수행(止觀修行)실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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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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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일불회장 서남사 주지 철학박사 현담합장.


수행의 이유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닦지 않으면 때 묻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처럼

닦아야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자신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밑바닥에서는 고독한 존재이다.

그 고독과 신비로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안으로 살피라


무엇이든 많이 알려고 하지 말라.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직접 체험한 것,

이것만이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



법정스님(1932∼2010)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잠언집〈수행의 이유〉의 내용이다. 수행하는 것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가르침을 이르고 있다. 수행자가 수행하는 것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의미보다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가르침, 즉 나옹왕사의 출가의 서원(誓願)이 이익중생(利益衆生)의 원력행인 인연 있는 모든 분들을 깨달음의 바다로 인도하는 것이 나옹왕사와 법정스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모든 출가 수행자의 본분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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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 하동군 악양면 중기길 지리산 형제봉(1,162m)아래 위치한  대성사 청정도량에서 대승불교일불회에서는 1박2일 지관(止觀) 이론 강의와 실참 수행하였다. 


형제봉 대성사에서 일불회원 모두가 오후 5시에 바랑을 풀고 잠시 포행하고 아래의 내용을 숙지하여 50분 좌선과 행선을 병행하고 10분 포행하여 철야정진하여 다음날 오전 사시까지 참석한 일불회원 모두가 정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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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대승불교일불회 집중수행의 원만회향은 대성사 지윤스님의 수행에 필요한 방사와 정성스럽게 준비한 간식과 공양을 대중스님들께 보시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 각자가 쌍차쌍조(雙遮雙照)의 중도(中道)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이루고자 모두가 가행정진(加行精進)하였다.


 이러한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원력행을 바탕으로 구경(究竟)에는 인연 있는 모든 중생들을 깨달음의 바다로 인도하겠다는 대승불교 일불회원 모두의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서원행(誓願行)을 드러내는 법석(法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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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참석 대중스님들께서 지관(止觀)에 관한 이론을 숙지한 내용이다.


 지관은 지(止)와 관(觀)의 합성어이다. 지는 정신을 집중하여 마음이 적정해진 상태이며, 관은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실상(實相)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와 관은 서로 불가분리의 상태에 있으며 지계(持戒) 등과 함께 불교의 중요한 실천덕목이 되어, 원시불교 이래의 여러 불경에 실려 있다.


 이러한 지관을 종합적으로 설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 때 천태 지의(天台智顗)가 지은 “마하지관 摩訶止觀”으로서, 좌선할 때의 마음의 문제를 10종으로 분류하고, 나아가 그 마음의 파악 문제를 10종으로 분류하여 자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지의 이후 천태종의 근본 교리가 되었다.


 천태종에서는 지는 마음의 동요를 누르고 본원의 진리에 정주(定住)하는 것, 관은 부동의 마음이 지혜의 활동이 되어 사물을 진리에 따라 올바로 관찰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때의 지는 정(定)에, 관은 혜(慧)에 해당한다. 즉, 지는 주체의 확립, 관은 이 주체의 확립에서 모든 현상을 전체적·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정확히 판단하고 자유로이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형식에는 3종이 있다. ① 선정을 닦아 차례로 실상의 진리를 깨닫는 점차지관(漸次止觀), ② 수행자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실천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정지관(不定止觀), ③ 처음부터 실상을 대상으로 삼아 원만하게 결핍됨이 없이 즉시 깨닫는다고 하는 원돈지관(圓頓止觀)이 그것이며, 원돈지관을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처음 수행에 들어가는 것은 지(止)와 관(觀) 두 문을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지(止)는 진여문 즉 각혜(覺慧)에 의해 모든 바깥 경계상을 그치게 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증득하는 것으로 사마타관을 수순하는 뜻이다. 멈추는 수행으로 명상 주제(걷기,호흡,자애)을 아라 차려서 마음속 탐(貪)·진(嗔)·치(痴) 등을 버리는 수행이다. 

관(觀)은 생멸문(生滅門)에 의해 인연생멸상을 관찰하여 분별함을 말하며 후득지(後得智)이루며 위파사나관을 수순하는 뜻이다.  반조와 이해 등 통해 자신의 마음속 번뇌를 꿰툻어보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속 번뇌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지(止)는 진여삼매, 일행삼매(일상삼매)를 말한다. 즉 무분별심, 적적성성한 마음, 개념에서 벗어난 법성에 마음을 머무는 것을 말한다. 좌선 시에도 적용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진여삼매가 유지되어야 한다. 진여삼매가 추구하는 것은 동정일여(動靜一如)한 상태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의 사마타, 위빳사나 구분법에 따르면 오히려 위빳사나(지혜) 수행 영역에 속한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백골관, 수식관, 지수화풍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를 지혜와 동떨어진 세간선으로 보며, 선지식의 보호가 없다면 외도의 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선정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수행들을 주로 사마타 수행으로 구분한다. 


 “대승기신론”에서 관 수행으로 분류하는 법상관, 부정관, 서원관, 정진관 역시 개념적인 생각에 집중하고, 되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테라와다불교의 아누사띠(수념) 등의 방법으로 지각(산냐)을 닦는 사마타 수행에 속한다. 그러나 이중 법상관이나 부정관 등은 “대념처경”이나 <청정도론>에서도 위빳사나 수행의 일부로 활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사마타 기법이지만, 넓은 의미의 위빳사나 수행(을 보조하는 수단)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승기신론”이 지와 관을 분류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지=개념을 벗어난 무분별성, 관=개념적 분별에 기초한 생멸성'으로 나뉘어진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의 구분법('위빳사나=개념을 벗어난 법을 대상으로 함, 사마타=개념을 대상으로 함')과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지(止)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대승기신론에서 내주(內住)·등주(等住)·안주(安住)·근주(近住)·조순(調順)·적정(寂靜)·최극정(最極靜)·전주일취(專住一趣)·등지(等持)의 아홉 가지 과정이다.


 ① 내주(內住)는 세속의 인과관계 속에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다 마음을 산란되게 하는 육진(六塵)이므로, 이와 같은 육진에 생각이 끌려감이 없이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라는 것이다. 

② 등주(等住)는 평등한 생각으로 차별적인 번뇌들을 꺾어 미세하게 하는 것이다. 

③ 안주(安住)는 차별적인 번뇌를 끊는 방편인 평등한 생각마저도 버림으로써, 외경에 대한 번뇌를 대치한다는 생각을 모두 비워서 편안히 머무는 것이다.

④ 근주(近住)는 일체법이 본래 무상(無相)임을 깨달아 일체법에 능히 생각할 만한 것이 없음을 밝게 아는 것으로, 무상을 깨닫는 데 근주의 묘(妙)가 있다. 

⑤ 조순(調順)은 다시 바깥 사물에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밖으로 흩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다. 

⑥ 적정(寂靜)·은 모든 분별하는 상(想)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데, 앞과 같이 닦아 익힌 마음으로 움직이는 마음을 동하지 않게 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⑦ 최극정(最極靜)은 그래도 또 마음이 흩어져 동요를 일으키면,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가 따로 없다[唯心無外境界].”는 정념(正念)을 일으켜서 마음의 동요를 다스리고 곧바로 마음의 자상(自相)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⑧ 전주일취(專住一趣)는 이와 같은 적정이 앉았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 어떠한 일을 하든 간에 적정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말한다.

⑨ 등지(等持)는 이와 같은 적정의 상태가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가 진여삼매(眞如三昧)의 상태이며, 이를 바꾸어 한결같이[ 等 ] 마음을 유지[持]한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지는 진여삼매를 목표로 하며, 구종심주는 지에 의하여 생멸하는 마음을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꾸어 놓는 과정을 아홉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가 지에만 치중하면 마음이 가라앉아 게을러지고 모든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 뿐 아니라 대비(大悲)의 이타행(利他行)을 등한히 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관(觀)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면의 관찰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① 이 세상에서 인과의 법칙에 따라 전변(轉變)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 하나도 영원하거나 불변하는 것이 없으며, 쉬지 않고 생성 파괴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無常觀)

②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모두 망념(妄念)의 발동으로 인하여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고 관찰할 것(苦觀).


③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우리가 생각해 내는 모든 의식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자주성을 지닌 것이 아니며, 과거의 것은 꿈과 같고 현재의 것은 번개와 같고 미래의 것은 구름과 같이 별안간 나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할 것(無我觀)


④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육신은 모두 부정한 것이며, 갖가지로 더럽혀져 있어 하나도 진실로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관찰할 것[不淨觀] 등이다. 이들 네 가지 관은 현실세계의 실상에 대한 기본적인 관이다. 이 관을 흔히 법상관(法相觀)이라고 부르는데, 법상관에 입각하여 보살은 대비관(大悲觀)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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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일불회 회원명부

고문 지장암 덕산스님, 회장 서남사 현담, 총무 용문사 진현스님, 감사 도성사 도성스님, 감사 혜명사 혜명스님, 회원 용화사 동진스님, 회원 무심사 법우스님, 회원 청량사 예담스님, 회원 백안사 성오스님, 회원 신선사 도선스님, 회원 보덕사 해공스님, 회원 천일사 영산스님, 회원 보현사 진성스님, 회원 천광사 대연스님, 회원 정오사 도각스님, 회원 정효사 정효스님, 회원 선덕사 지유스님, 회원 천해암 정광스님, 회원 대성사 운붕스님, 회원 토함사 지윤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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