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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일불회 해진스님 주석사찰 극락사 6월 정기법회에 앞서 통도사 자장율사의 구도의 삶에서 출가 정신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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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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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 불탑게

萬代輪王三界主(만대윤왕삼계주)    

만대의 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雙林示滅幾千秋(쌍림시멸기천추)    

사라쌍수 열반 이래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가

眞身舍利今猶在(진신사리금유재)    

부처님 진신 사리를 지금 여기에 모셨으니

普使群生禮不休(보사군생예불휴)    

뭇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를 쉬게 하지 않으리


위의 게송은 통도사 적멸보궁 현판 아래 주련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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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3일 해진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극락사에서 봉행되는 대승불교 일불회 정기법회에 앞서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신 통도사와 산내암자인 자장암에 부처님을 참배하고 자장율사의 출가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자장율사(慈藏律師,590∼658)께서는 신라시대 율학의 기틀을 확립시킨 고승이다. 자장율사의 행적은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수록되어 있는「자장전(慈藏傳)」과 『삼국유사(三國遺事)』의「자장정율(慈藏定律)」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자장정율조(慈藏定律條)」, 「황룡사구층탑(黃龍寺九層塔)」,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 등에 자장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일연(一然)이 「자장본전(慈藏本傳)」, 「별전(別傳)」, 「향전(鄕傳)」, 『당고승전』, 「황룡사기(黃龍寺記)」, 「오대산본전(五臺山本傳)」 등을 참고하여 엮은 것이다. 이 밖에도 『삼국유사』의 편찬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인 1307년(충렬왕 33)에 민지(閔漬)가 지은 「봉안사리개건사암제일조사전(奉安舍利開建寺庵第一祖師傳)」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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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 자장율사는 7세기 전반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때에 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고승으로서 그는 무림(茂林)의 아들로 성은 김씨, 속명은 선종랑(善宗郞)이었다. 무림은 진골 출신으로 높은 요직을 지냈으나 늦게까지 아들이 없음에 불교에 귀의하여 천부관음을 조성하고 아들을 낳으면 불교계의 중요한 인물로 삼겠다고 축원하였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후 세속의 번거로움을 벗어나 수행하고자 본인의 집을 원녕사(元寧寺)라는 절로 바꾸었다. 大德慈藏, 金氏, 本辰韓眞骨蘇判(三級爵名)茂林之子. 其父歷官淸要, 絶無後胤, 乃歸心三寶, 造于千部觀音, 希生一息, 祝曰: 若生男子, 捨作法海津梁. 母忽夢星墜入懷, 因有娠, 及誕, 與釋尊同日. 名善宗郎, 神志澄睿, 文思日贍, 而無染世趣. 早喪二親, 轉厭塵譁, 捐妻息, 捨田園爲元寧寺, 


자장은 고골관(枯骨觀)을 닦고 엄격히 계율을 실천하였다. 자장이 이와 같은 수행을 계속해 나갈 당시, 왕은 자장에게 재상에 오를 것을 명하였으나 자장이 이를 거듭 거절하였고, 왕은 자장이 조정의 관리로 취임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하였다. 이에 자장은 “나는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파계(破戒)하고 백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부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왕은 자장의 결심에 감동하여 그의 수도를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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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년 자장은 제자 10여명과 함께 당(唐)나라에 가서 종남산(終南山)과 오대산(五臺山)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자장은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였고, 문수보살로부터 가사(袈裟)1벌과 사리 1백과를 받았다. 이후 자장율사는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서 3년간 수도하고 화엄종(華嚴宗)의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운 뒤, 643년에 『대장경(大藏經)』 400여 함, 당번, 화개 등을 가지고 신라로 귀국하였다.

  

자장율사는 귀국 후 분황사(芬皇寺)에 머무르며, 궁중에서『섭대승론(攝大乘論)』을 강의하였고, 황룡사(皇龍寺)에서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덕여왕에게 황룡사 9층목탑을 세울 것을 건의하여 건립하게 하였다. 그 후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승려들에게 계(戒)를 내리고, 규율을 단속하며 신라불교 승단을 정비하였다. 

 

또한 『삼국유사』 「자장정율조(慈藏定律條)」에 “나라에서 계(戒)를 받고 불법(佛法)을 받드는 것이 열 집에 여덟아홉 집이나 되었으며, 머리를 깍고 승(僧)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해마다 불어났다. 이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계단(戒壇)을 쌓아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을 받아들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當此之際, 國中之人, 受戒奉佛, 十室八九, 祝髮請度, 歲月增至. 乃創通度寺, 築戒壇以度四來.(戒壇事已出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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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년 자장율사는 영축산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신라승들이 여법하게 수계를 받을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통도사는 계단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수계의식을 거행하며 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계단의 이름을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고 부르는 데 계를 지키는 마음이 금강(金剛)과 같이 굳건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이와 같이 자장율사의 돈독한 신심과 지계(持戒) 정신을 본받아 창건하신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통도사 적멸보궁에서 ‘지금 여기’ 부처님의 지혜작용을 드러내고자하는 대승불교 일불 회원 모두가 다시 한번 순간순간 불성(佛性)을 돈발(頓發)하며 금강(金剛)과 같은 신심으로 마음의 성(城)을 구축하고 불퇴전(不退轉) 정진하기를 서원(誓願)하면서 6월 정기법회 해진스님 주석 사찰 극락사에서 돈오일문(頓悟一門)의 대승불교 일불회 도반으로서 시절 인연으로 함께 일심 동행 정진를 발원하고 회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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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게송은 700여 년 전 나옹선사께서 참선 납자에게 드린 활구(活句)이다.

璨璨心珠見也麽 이 빛나는 마음 구슬을 보는가

六窓俱現更無差 여섯 창에 모두 나타나 조금도 차별 없다

忽於現處知端的 나타나는 그곳에서 분명히 알면

大地山河摠一家 산하대지가 다 같은 한 집이리라.

 

대승불교 일불회원 

고문 용화사 동진스님 고문 대성사 운붕스님 

회장 서남사 현담스님 총무 성불사 정광스님 감사 도성사 도성스님 

회원 보덕사 해공스님 회원 청량사 예담스님 회원 백안사 성오스님 

회원 천일사 영산스님 회원 극락사 해진스님 회원 용문사 청명스님

반야용선사 혜동스님 회원 송하사 거암스님 회원 대성사 법정스님

회원 무심암 도신스님 회원 천문사 도정스님


대승불교 일불회장 철학박사 覺呑 현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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