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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 불적답사길 "구도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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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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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귀국 및 전법도생

 

무술년(1358) 3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遼陽)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古潭)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 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精靈)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君子千里同風)'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나옹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였다.

 

나옹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方節)을 보내 내승마(內乘馬)로 나옹스님을 성안으로 맞아들여, 1015일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하니, 나옹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神光寺)에 머물기를 청하니 스님은 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 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金仲元)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나옹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나옹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보통 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나옹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나옹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서, “()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나옹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약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 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 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 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나옹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을 보내 특별히 내향(內香)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西海道) 지휘사 박휘(朴儀), 안렴사(按兼使) 이보만(李寶萬), 해주목사(海州牧使) 김계생(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다가, 을사년(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산(龍門山), 원적산(圓寂山)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正陽庵)에 있었다. 정미년(1367) 가을에 임금은 교주도(交州道) 안렴사 정양생(鄭良生)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普菴)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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