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B한국불교방송

KBB한국불교방송

HOME > 신문 > 종교

나옹왕사 관련 사찰 불적답사 경상도편 "장육사"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20.10.30 09:00
조회수
579
  • URL 복사


c81d2310da2946bfd47bc863f15b027d_1603857808_3105.jpg
c81d2310da2946bfd47bc863f15b027d_1603857808_4467.jpg
c81d2310da2946bfd47bc863f15b027d_1603857808_6069.jpg
c81d2310da2946bfd47bc863f15b027d_1603857808_688.jpg
 

장육사(裝陸寺) 나옹왕사 창건사찰

주소: 경북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172(갈천리 120) / 영덕군에서 32.3km, 39

 

장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1355(공민왕 4)에 창수면 출신의 나옹(懶翁)이 창건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뒤에도 이곳에서 수도를 하면 고승이 된다고 하여 많은 승려들이 운집하였으며, 수도도량으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세종 때에 산불로 인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당우가 전소되었으며, 그 뒤 중창하였다. 장육사의 대웅전 공사에 관해서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던 목수가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하여 소문을 듣고 장육사 대웅전 공사를 자원하였다. 공사가 거의 끝나 마지막 기둥 네 개만을 남겨놓았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 목수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여 어머니가 소생하지 못하였다 하며 종적을 감추었다.

 

그 뒤 다른 목수를 기용하여 남은 공사를 완공하였으나 기술의 부족으로 뱃머리 집으로 만들고 말았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채 명맥만을 이어오던 것을 1900년에 이현규(李鉉圭)가 가산을 모두 바쳐 중수하였으며, 최근에는 주지 권성기가 폐찰이 된 평해 광암사의 유물을 옮겨와서 산신각과 금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조선 초기의 전설이 담긴 정면 3, 측면 3칸의 대웅전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면 5,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인 범종루, 산신 각 · 금당 · 홍련암(紅蓮庵) ·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내에는 1395(태조 4) 태조와 왕비를 송축하기 위하여 지방 관리들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 이 보물 제9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벽에는 매우 빼어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은 조선 초기의 건칠보살상으로 복장 안에서 이 불상을 조성한 경위를 밝힌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과 금칠을 새로 한 일을 기록해둔 개금묵서기(改金墨書記)가 발견되었다.

 

그에 따르면, 이 불상은 1395년에 백진(白培)을 비롯한 영해부의 관리들과 부민들이 시주하여 조성한 것으로, 위장사 (掌長寺)' 선당(禪堂)에 모셔져 있다가 1407년에 개금되었다고 한다.

 

그 절이 폐하게 되자 이 불상을 이곳 장육사로 옮겨왔다.

 

머리에 쓴 금동관은 얇은 금동판을 삼각형으로 오린 위에 동판을 오려 만든 꽃무늬 장식을 달아 매우 화려하다. 이런 보관은 고려 말 조선 초 보살상들의 특징이기도 하나 고려 말엽 것보다는 좀 간략해진 편이다. 그 안의 머리 자체도 검은색으로 칠한 민머리로, 대개 상투를 틀었던 고려시대 보살상들과 다르다.

 

얼굴은 대체로 사각형 모양이나 볼께는 좀 갸름하다. 눈이 길게 치켜지고 콧날도 매우 우뚝해 강한 인상을 주는데, 입가에 미소는 없다. 상체를 앞으로 깊게 숙인 모습도, 매우 당당하게 정면을 보던 고려시대 상에서 머리를 앞으로 숙이는 조선시대 상으로의 변화를 보인다. 옷은 양 어깨에 다 걸친 통견의를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14세기식의 가사고리장식과 띠 매듭이 있다.

 

옷 위의 영락장식은 매우 화려 하여 등 위나 팔에까지 치장되어 있다. 화려한 가운데 상체는 건장한 편이고, 오른손은 가슴께에 들어 올려진 상태이며, 왼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다. 전체 높이는 86cm이며 보물 제993호이다.

 

삼존불 뒤에 모셔져 있는 영산회상도 후불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73)는 조선시대 영조 1764년에 만들어졌고, 지장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74)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예술적 가치와 미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법당 우측에 칠성탱화와 신중탱화도 매우 아름답고 화려하다. 특히 법당 천장에 그려진 주 악비천상과 좌우벽면의 문수보살벽화, 보현보 살상벽화는 화려하면서 아름다워서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육사 뒷산은 운서산(雲山, 520m)이며 장육사 주위 창수면은 주위에 칠보산(七寶山, 810m), 등운산(騰雲山, 767m), 독경산(讀經山, 683m), 형제봉(兄第峰, 704m) 등 높은 산들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장육사는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주지는 효상스님으로 가람불사와 신도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소승이 영덕과 인연되어 온 지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육사와의 인연은 그 당시 주지스님신 입적하신 해산스님과 인연이 되어 장육사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처음 영덕에 와서 축산면 기암 외진 곳에 밭을 매입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정진할 때에, 노스님께서 공적인 자리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절에 한 번 다녀가라는 말씀이 있어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을 내어 스님을 찾아 뵈었다.

 

장육사에 도착하여 스님을 뵈오니 쌀을 한 말 주시며 손을 잡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말씀에 힘을 얻었다. 장육사 길을 내려오면서 그 당시의 기분은 한 수레의 곡식을 얻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때에 주지스님 계시던 방에 걸려 있던 나옹왕사의 선시(禪詩)'청산은 나를 보고'를 알게 되었다. 그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다시 한번 해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해 본다. 나옹왕사 불적답사길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조용히 홀로 부처님을 참배하고 만인에게 회자되는 나옹왕사의 전시를 크게 한 번 읊어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왕사와 인연된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는 불사가 원만히 회향되기를 간절히 발원하면서 장 육사 산문을 나섰다.

 

이후 전국의 나옹왕사 불적답사를 하면서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과 장육사에 한 번

더 찾아갔다. 대웅전 부처님 참배와 홍련암 나옹왕사 영정에 삼배의 예를 갖추고 또한 창수면 주최 나옹문화제 추진위원회와 창수면 체육회에서 주관하는 '1회 나옹문화제 및 제9회 창수면민 체육대회봉행 후 나옹왕사 불적답사의 회향에 즈음하여 다시 한번 예를 갖추었다.

 

  • URL 복사

KBB한국불교방송 방송/신문/매거진 무단 저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 출처 'KBB한국불교방송'을 반드시 표시하셔야 합니다.

KBB한국불교방송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제보 053-1670-2012

많이 본 매거진

인기 영상

많이 본 신문

KBB 전체 인기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