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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적암(妙寂庵)
1339년 나옹왕사 출가 사찰 주소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산 8번지
영덕군에서 144km, 3시간 13분, 도보 10분
묘적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에 속하는 대승사(大乘寺)의 산내암자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말기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말기에 나옹(懶翁)이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로 유명하다.
나옹이 처음 이 절의 요연(了然)을 찾아 중이 되기를 청하였을 때, 요연은 “여기 온 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물었다. 나옹이,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마는, 보려 하여도 볼 수가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고 한 뒤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물었다.
요연은 자신도 알지 못하니 다른 고승을 찾아가 물어볼 것을 권하였다. 뒷날 나옹이 도를 깨닫고 다시 이 절로 돌아와서 회목 42그루를 심었으며, 그 뒤 나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절에 찾아왔다.
나옹으로 인하여 이 절은 조선 후기까지 불교의 한 성지(聖地)로 부각되었다. 1668년(현종 9) 성일(性日)이 중건하였고, 1900년 취원(就圓)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여러 기의 부도가 있다.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9호이며 나옹화상 영정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8호이다.
※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들과 함께 나옹왕사 출가 사찰인 묘적암을 동행 순례하기로 하였다. 나옹왕사 불적답사를 봉행하기로 서원을 세우고 영덕에서 벗어나 가는 첫 번째 사찰이다. 영덕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여 대승사까지 144km로서 3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대승사 부처님을 참배하고 묘적암을 향하였다.
윤필암 입구에서 약 400m 올라와서 주차를 하고 묘적암에 들렀다. 스님께서 정진하고 있어 조용히 관세음보살과 나옹화상 진영에 삼배를 하고 도량을 둘러보았다. 1862년(철종 13년) 기록한 나옹화상의 행적과 1900년(광무 4년)에 석두거사(石頭居士) 김병선(金炳先)이 기록한 묘적암 중수기를 살펴보았다.
또 전각 좌측에 건물 한 동이 있는데 '일묵여뢰'라는 글씨가 적혀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서예가 은초(隱雄) 정명수(鄭命壽, 1909~1999)선생이 1977년에 쓰신 현판 글씨라 한다.
스님께서 정진하고 있어서 동행한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들과 함께 묘적암 도량을 나왔다. 하산하는 길에 우물에서 물 한잔하고 마애여래좌상 전에 삼배를 드린 후, 전날 준비한 나옹왕사의 고루가(枯讚歌)’ 일부를 읽고 내려 왔다.
이 마른 해골이여,
지금 이것이 마른 해골임을 모르면 어느 겁에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리.
이 물건이 뜬 허공 같음을 알아야 하네.
몇 천 생이나 생사에 윤회하면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사생육도 쉼 없는 곳을 돌아왔다 다시 가면서 몇 번이나 몸을 받았나.
축생이나 인천으로 허망하게 허덕였던가. 먹이 구해 허덕이나 마음에 차지 않아
이기면 남을 해쳐 제 몸을 살찌우다가 엄연한 그 과보로 업을 따라 태어나네.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내 뼈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이 세계나 다른 세계에 남김이 없이 오며 가며 흩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리.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권하노니 그대는 머리 돌려 빨리 행을 닦아라.
전생의 과보가 모든 장애 되리오.
원명한 본바탕 성품바다는 맑으니라.
본적本寂
겁겁(劫劫)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空)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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