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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 승가사(僧伽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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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21.10.05 09:3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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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사 경내로 오르는 계단
▲ 승가사 경내로 오르는 계단

 

승가사 대웅전, 앞에는 연등이 가득하다.
▲ 승가사 대웅전, 앞에는 연등이 가득하다.

 

승가사 경내
▲ 승가사 경내

 

대웅전 옆에서 본 경내
▲ 대웅전 옆에서 본 경내

 

승가사 종각
▲ 승가사 종각

 

대웅전에서 본 승가사 석불 전경
▲ 대웅전에서 본 승가사 석불 전경

 

승가사 석불로 오르는 계단
▲ 승가사 석불로 오르는 계단

 

승가사 석불
▲ 승가사 석불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서울 종로구 북한산 사모바위 아래 남쪽 기슭에 자리한 승가사는 조선시대 한양주변 동서남북을 대표하는 절로 서울 북쪽에 있다.  본래 창건은 통일신라 경덕왕 15년(756) 당시 당나라의 생불로 추앙받고 있던 천복사의 승가(僧伽)대사를 사모한다는 뜻에서 승가사라 하였다고 한다.

 

승가사는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의 거의 정상부분인 8부능선에 자리하고 있어, 걸어서 올라가자면 구기동 이북오도청 근처에서 약 1시간 30분은 걸어가야 하기에 꽤 힘든 길이나, 지금은 절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매 시간 운행하고 있어, 다리가 편치 않은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이런 승가사는 신라이래 고려를 거치면서는 대각국사 의천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할 정도로 유서깊은 절이었다. 그러나 조선조에 이르러 전국의 사찰을 통폐합하면서 선교 양종으로 나누었을 때 승가사는 선종으로 구분하여 그 명을 이어왔다. 조선 말기에는 고종의 왕비인 민비가 왕자 낳기를 기원하면서 전국의 기도처에 불공을 드릴 때, 이곳 승가사 마애부처님에게  시주를 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사찰의 전각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한국전쟁이 끝이난 뒤 1957년 비구니 도명스님이 지금의 대웅전, 영산전, 약사전 등 전각을 중창하였으며,  상륜스님이 산신각, 향로각, 법종각 ,요차채 등 기타 건물들를 중창불사 하였다. 승가사 위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어 고려시대 그 바위 속에 부처님의 모습을 새겼다. 부처님의 상호는 원만구족한 모습이며, 불상의 머리 위에는 비가 와도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돌로 처마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승가사를 거쳐간 스님들이 많으나, 그중에 조선시대 초기 당대 금강경에 대한 깨달음이 컸던 함허득통화상을 꼽을 수 있다. 함허득통(涵虛得通)화상은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정리한 어려운 금강경을 알기 쉽게 해설한 스님으로 유명한데, 불교역사에 있어서 금강경을 가장 잘 설명한  중국의 네 스님 속에 조선의  함허득통화상이 들어있다. 이는 그가 얼마나 금강경에 대한 깨달음이 컸나를 말해주는 것이다.

 

역사상 금강경을 해설한 수많은 스님들 중에 가장 잘 설명한 다섯스님이 해설한 책을 지금도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라하여 금강경을 연구하는 스님들의 교과서로 쓰고 있다.

 

현재 승가사의 유물로는 석조 승가대사상(보물 제1000호)과 승가사 맨 위에 위치한 고려시대 석가여래석불(보물제 215호)가 있다. 그런데 승가대사상은 대웅전 뒷편 약수물이 흘러나오는 석실 안에 모셔져 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의 효험으로 약사여래불로도 불리고 있다.

 

5월 12일,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오자 승가사 경내는 온통 연등으로 가득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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