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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는 전남 곡성에 있는 고찰이다.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 세분의 스님에 의하여 개창되었으나, 이후 문성왕 9년(847) 혜철국사(적인선사)가 선종사찰로 새롭게 개산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형성하였다. 그뒤 고려초 광자대사가 머물면서 대규모 사찰을 이루었고, 동리산문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태안사고 동리산문의 종찰로 송광사 화엄사도 태안사의 말사였을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았다. 창건당시부터 고려까지는 대안사(大安寺)였다가 조선후기에 이르러 태안사로 이름을 고쳐부르게 되었고, 한국전쟁으로 대웅전도 불에타고 말았다. 현재의 대웅전 등 전각들은 대부분 최근에 다시 중건한 것이다.
태안사 경내에는 구산선문 중 동리산문을 개창한 혜철국사(적인대사) 사리탑과탑비, 그리고 광자대사탑과 비신이 없는 탑비가 있으며, 그 밖에도 대바라 등 보물이 3점 더 있다.
신록이 우거진 여름이면 절 입구에서부터 2.5km에 이르는 진입로가 우거진 숲으로 이루어져, 그야말로 속세를 떠난 피안의 세계를 찾아가는 듯 깊은 맛이 있으며, 새로 건립한 일주문을 지나면, 계곡을 가로질러 능파교와 다리 위에 지어진 능파각이 더욱 운치를 더한다.
능파교를 막 올라서면, 한국전쟁당시 경찰관들의 희생을 기리는 순국비가 있어, 이곳에서의 치열했던 현대사의 비극도 느낄 수 있다. 속세를 떠나 극락에 이르는 줄 알았는데, 이곳이 같은 동포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의 역사적 현장이었다니, 세상에서 이룩한 극락세계도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금새 지옥으로 변한다는 현실을 다시금 알게한다.
그나마 태안사를 선종사찰로 개창한 적인대사(혜철국사)의 사리탑과 탑비가 대웅전 위쪽에 온전히 있고, 또 태안사를 크게 중창했던 광자선사탑이 온전함을 다행으로 여기며, 구산선문 동리산문 종찰 곡성 태안사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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