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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와 인연이 깊은 충주 엄정면 백운암(白雲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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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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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와 인연이 깊은 충주 엄정면 백운암(白雲庵)


백운암을 향하여 오르는 길목에서

▲ 백운암을 향하여 오르는 길목에서

 

건너편 언덕에서 본 백운암
▲ 건너편 언덕에서 본 백운암

 

 

계곡 안쪽에서 본 백운암
▲ 계곡 안쪽에서 본 백운암

 

백운암 산신각
▲ 백운암 산신각

 

백운암 대웅전, 본래 인법당(사람이 살면서 불당으로 쓰던 건물)으로 쓰던 건물을 그대로 대웅전으로 쓰고 있어, 대웅전으로서의 격에는 미치지 못하여 아쉬웠다.
▲ 백운암 대웅전, 본래 인법당(사람이 살면서 불당으로 쓰던 건물)으로 쓰던 건물을 그대로 대웅전으로 쓰고 있어, 대웅전으로서의 격에는 미치지 못하여 아쉬웠다.

 

철불과 탱화
▲ 철불과 탱화

 

철불 정면
▲ 철불 정면

 

철불의 옆면
▲ 철불의 옆면
백운암 마당 한켠에 피어난 얼음새꽃(복수초)
▲ 백운암 마당 한켠에 피어난 얼음새꽃(복수초)

 

 

[우리문화 신문 최우성 기자]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를 지나다 이름이 고운 백운암(白雲庵) 안내판을 만났다. 그런데 백운암은 이름처럼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높디 높은 첩첩산중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골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였다. 지금의 백운암은 그리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이곳에 모셔진 철조여래좌불(쇠로 만든 앉아있는 부처님)은 고려때 조성된 것으로 최근 보물 제1527호로 지정된 부처님이다.

 

백운암에 모셔진 철조부처님은 본래 백운암 근처에 있었던 고려시대 큰 절 '억정사'에 모셔졌던 부처님으로 추정되는데, 억정사는 현재 백운암에서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절이다. 지금은 억정사의  자취는 찾아보기 어렵고, 그 터로 추정되는 곳의 비탈면은 밭과 과수원으로 되어있으며, 몇 가구의 농가가 있는 볕 잘드는 시골 마을에 불과하다.

 

차를 몰아 백운암 이정표를 보고  먼 거리에서 바라다보면 언덕 위에 요즈음 보기 어려운 커다란 한옥비각이 있는데, 그 비각이 바로 고려시대 후기 억정사 대지국사의 탑비다. 대지국사가 고려시대 국사로 추앙받았던 스님이고 보면, 비석 뿐 아니라 그의 사리탑도 있었을 것이나 승탑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백운암에  철조여래좌불을 모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 참으로 구구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백운암은 1866년 고종 23년 당시 명성황후가 믿고 의지하던 진령군(眞靈君)이라는 무당과 관계있다. 명성황후는 임오군란으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쫓겨 장호원으로 피난을 가,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주변에서 용하다는 무당들을 수소문 하던 중 무당 진령군을 만나게 되었는데, 진령군은 명성황후를만나 명성황후가 팔월 보름쯤이면 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무당의 말대로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환궁하게 되었고,  명성황후는 자신의 앞날을 예언해 주었던 진령군을 최고의 예언가로 믿고 늘 가까이 두고 상의하게 되었으며 그녀에게 '여대감'이라는 벼슬까지 내렸다. 이후 진령군은 요즘말로 명성황후의 비선실세가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럴즈음, 무당 진령군은 1886년 희한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에 하얀 옷을 입은 철불이 나타나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으라 계시하고 떠났다. 그말에 무당은 꿈속에 본 곳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얼마를 헤매다  꿈속에서 보았던 철부처님을 발견하고, 그곳에 절을 지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백운암이다.

 

그렇게 땅속에서 발견된 철불은 흙을 다 털어내고, 오랫동안 녹슬고 깨진 부분을 보수하여 금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나 백운암에 안치되었는데, 이를 최근에 문화재보존처리과정을 거쳐 덧붙였던 것들을 다시 제거하고 철불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 지금의 '철조여래좌불' 이다.

 

백운암 철조여래좌불은 오른쪽 어깨를 내놓은 모습(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마귀를 항복시키고 땅을 가리키는 수인)으로 높이 87cm이고, 부처님의 얼굴의 이목구비가 잘 되었으며, 머리에는 나발(소라모습의 머리형태)과 육계(둥글게 솟아난 머리)가 있는 잘 조성된 부처님이다.

 

귀는 비교적 짧은 편이고, 눈은 실눈처럼 가늘게 뜬 모습이다.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를 머금고 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이 있고, 어깨의 모습도 당당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있는 모습의 고려시대 부처님 이다. 부처님의 뒤에는 활활타오르는 화염문양의 배경으로 광배도 있었을 것이나, 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백운암의 철조여래좌불과 비슷한 모습의 불상으로는 근처에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호)과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제512호)이 있으며, 또 다른 곳에 있는부처님으로는 철원 도피안사 철조여래좌상과도 그 맥이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백운암 철조여래좌불은 보물 제1527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귀한 백운암 부처님을 보고 돌아서며  고려 후기까지 화려하게 꽃피워지던 불교가 마치 겨울이 되어 산천초목의 나무잎 떨어지듯 건물과 불상들이 모두 사라진뒤 땅속에 묻히고 파괴되고 흩어졌던 불교 역사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백운암 철조여래좌불처럼 땅속에 묻혀있다가 다시 발견되는 경우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가꾸고 이룩한 문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언제 어찌 될지 알 수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부처님이 무당의 현몽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으니 이제라도 백운암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인간들이 큰 덕을 베풀도록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화신으로 남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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