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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스님들을 모신 사당, 대흥사 안 '표충사(表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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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0 0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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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내 표충사권역,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사당권역
▲ 대흥사 내 표충사권역,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사당권역


표충사권역 출입 정문(호국문)
▲ 표충사권역 출입 정문(호국문)


임진왜란의 삼대스님을 모신 표충사 사당
▲ 임진왜란의 삼대스님을 모신 표충사 사당


표충사현판, 정조임금이 쓴 글씨
▲ 표충사현판, 정조임금이 쓴 글씨


표충사(表忠祠)라는 글씨는 정조가 직접 쓴 글씨이며, 임금의 글이 있다는 뜻의 어서각 현판
▲ 표충사(表忠祠)라는 글씨는 정조가 직접 쓴 글씨이며, 임금의 글이 있다는 뜻의 어서각 현판


휴정 서산대사 초상화
▲ 휴정 서산대사 초상화


서산대사 위패
▲ 서산대사 위패


유정 사명당대사 초상
▲ 유정 사명당대사 초상


사명당 위패
▲ 사명당 위패


처영 뇌묵당대사 초샹
▲ 처영 뇌묵당대사 초샹


처영대사 위패
▲ 처영대사 위패


대흥사 고승들을 모신 조사당
▲ 대흥사 고승들을 모신 조사당


표충사에 모신 서산대사 사명당대사 처영대사의 공적을 기록한 비각
▲ 표충사에 모신 서산대사 사명당대사 처영대사의 공적을 기록한 비각


최근에 세운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
▲ 최근에 세운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


비석-1
▲ 비석-1


비석-2
▲ 비석-2


대흥사 부도전,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서산대사의 승탑도 있다.
▲ 대흥사 부도전,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서산대사의 승탑도 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의 남해바다에 접한 해남땅에는 큰사찰 대흥사가 있다. 크게 흥한다는 뜻의 사찰명으로 그 창건 설화는 삼국시대까지 오르는 오래된 절임에는 분명하나 이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그런데 대흥사는 후덕한 두륜산 넓은 구릉지에 위치하여 사찰의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대흥사는 그 규규모가 큰 절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느 사찰에는 없는 표충사(表忠祠)가 있어 한국 내 특별한 사찰이 되었다. 표충사란 절 이름이 아니라, 사당의 이름으로 본래 사찰과는 별 관계가 없는 권역으로, 훌륭한 선조의 혼령을 대신하여 그 위패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밀양에 있는 표충사(表忠寺)와 그 의미는 상통하나 밀양 표충사는 사명대사만을 모신 사찰명이고, 대흥사 표충사는 대흥사 내 별도로 3인의 스님을 모신 사당이다.


대흥사 내 있는 표충사(表忠祠)는 조선조 중기 불어닥친 임진왜란을 당하여 풍전등화 같았던 국란속에 불살상을 가장 큰 규율로 여기며 불도에만 전념하던 스님들이 일본군의 침략에 분연히 일어나 이들과 목숨을 걸고 창과 활을 들고 맞섰을 뿐 아니라, 당당히 이들을 패퇴시키는데 큰 공적을 남겼기에, 충효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에 선비 유생들에게도 귀감이 되도록 3인의 스님들의 뜻을 기리고자 임금이 직접 현판을 써주고 스님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 유교식 사당을 세운 곳이다.


표충사에 모셔진 스님들은 임진왜란 당시 초대 승군대총섭으로 조선 승군들의 사령관이었던 서산대사 휴정, 서산대사의 수제자로 그의 뒤를 이어 승군대총섭이었던 사명당대사 유정, 그리고 서산대사의 제자로 호남 금산사를 중심으로 크게 활약했던 뇌묵당대사 처영스님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을 다한 후, 이들의 공적은 크게 평가받지 못하였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서 이들의 공적이 높이 평가되었다. 임진왜란이 지난 후 200년 즈음이 지난 정조에 이르러 정조임금은 이들을 충신의 반열에 올리고, 이들을 모신 전각의 현판(表忠祠)을 직접써 줌으로써 이들의 공적을 후대에 길이 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3명의 스님들이 이곳에 모셔진 연유는 서산대사(1520~1604)가 입적하기 전 자신의 의발을 큰 전란에도 안전한 곳으로 대흥사를 꼽고, 이곳에 전하였으며, 이런 연유로 대흥사 부도전에는 서산대사 휴정의 승탑이 대흥사에 세워지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유정 처영스님의 위패를 함께모신 표충사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대흥사 한 권역에 표충사(表忠祠)를 짓고, 그 옆에는 이들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이 상하지 않도록 비각도 세웠다. 가을이 저무는 대흥사 경내를 돌아보고, 두륜산 중턱에 있는 일지암을 돌아보면서, 가을 풍광의 아름다움만을 즐기기에는 너무도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억불의 시대에 호국불교의 표상으로 유가들 마져 감동시킨 스님들의 공덕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누가 이들이 들었던 창과 활이 불가의 금기인 불살생의 계율을 어겼다고 질책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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