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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보원사는 충남 서산군 운산면 용현리에 있었던 큰 절이었다. 보원사의 창건은 백제 후기로 생각되는데, 보원사터 근처에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마애삼존불》이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용현리마애삼존불》은 백제 후기에 세운 보원사의 주변 기도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원사에 대한 기록은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 체징의 탑비에 나오는데, 보조선사 체징은 827년(흥덕왕2)에 보원사에서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율)를 받았다고 한다. 또 신라 후기 효공왕8(904) 보원사는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로 융성하였다고 최치원이 법장화상전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런 보원사는 고려초 광종26년(975)에 당대 고승인 법인국사 탄문이 입적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정종 2년(1036)에는 보원사의 계단(戒壇)에서 승과고시로 경전시험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계단(수계를 받는 제단)이 어디였는지 알 수 없으나 보원사에도 통도사 금강계단이나 금산사 방등계단 처럼 계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조에 이르러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상왕산에 보원사가 있다고 한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때 만들어진 경판이 현재 상왕산 건너편에 있는 개심사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절의 이름도 바뀌어 강당사가 된 것으로 보아, 전란을 겪으면서 크게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더욱 기울어가던 절은 결국 폐사되고 말았다.
현재 보원사터에는 보물로 보원사터 석조(물을 담는 큰 돌그릇), 보원사터 당간지주, 보원사 오층석탑, 보원사터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탑비 등 5점의 보물이 있으며, 그외 이곳에서 발굴되었으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보원사 철조여래좌상이 있다.
백제의 미소로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용현리마애삼존불》은 보원사터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바위산의 암벽위에 있다. 한국의 고찰들은 수많은 수도승들이 거쳐갔던 한국문화의 산증거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수천년의 역사기록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나마 땅속에 묻혀있던 돌로된 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승탑 등이 있어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음을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폐사가 되고만 보원사터의 한쪽에는 끊어진 절의 명맥을 다시 살리겠다며 가설건축물을 세우고 기원하는 보원사가 있어 희망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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