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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문화원 선비 아카데미(academy)특강법회 (나옹왕사 열반 651주년 깨달음의 법향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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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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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가( 翫珠歌)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 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這靈珠極玲瓏 體徧河沙內外空 人人帒裏堂堂有 弄去弄來弄莫窮


마니 구슬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하며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或摩尼或靈珠 名相雖多體不殊 刹刹塵塵明了了 還如朗月滿江秋

 

위의 게송은 700여 년 나옹왕사께서 남기신 삼수가(三首歌) 중 완주가( 翫珠歌) 첫 머리에 나오는 게송이다. 일명 ‘영주가(靈珠歌)’로도 부르며 7언 기조 60구이다. 「백납가(百衲歌)」·「고루가(枯髏歌)」와 함께 ‘나옹삼가(懶翁三歌)’로 일컬어졌으며, 『나옹화상가송(懶翁和尙歌頌)』에 함께 수록되어 전한다. 후대에 불광산(佛光山) 대원암(大源庵)의 비구 법장(法藏)이 이들 세 곡을 고쳐서 『보제존자삼종가(普濟尊者三種歌)』로 내놓았는데, 이 때 「완주가」는 300구로 늘려졌다. 이 게송은 염주(念珠)를 자성(自性)에 비유하여 그 기용(機用)을 말하고, 그 공덕을 예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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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 열반 651주년을 앞두고 지난 6월 16일 이완섭 사무국장님의 인연으로 영덕문화원에서 주관 매주 화요일 경북 선비 아카데미 인문화 강좌에 초청 받아 지역의 고려말 고승이신 나옹왕사를 선양(宣揚)하면서 2시간에 걸쳐 특강 법회를 열었다. 소승이  2008년 7월 31일 영덕군에서 ‘나옹왕사 기념사업회’의 비영리 법인단체를 구성하면서 고려말 고승 공민왕의 스승이신 나옹왕사께서 이 곳 덕 높은 길지(吉地) 영덕태생임을 알게 되었다.  후학으로서 정진하여 나옹왕사의 깨달음과 중생교화 원력행을 본받고 선양(宣揚)하기 위해 한국불교의 역사관과 『한국불교전서』의 「나옹록」에서 드러난  행장(行狀)이나 어록을 통하여 그 분의 사상과 업적, 수행체계를 통하여 전법도생(傳法度生) 크신 역사를 깨닫게 되었다. 


이후 나옹왕사의 출가 서원이신 ‘초출삼계(超出三界) 이익중생(利益衆生)’의 원력행에 부합(符合)하고자 나옹왕사의 깨달음을 통한 대중교화의 큰 발자취를 계승 발전 유지시키고, 나옹왕사의 현창사업(顯彰事業)에 일심동행 함께하고자 기념사업회에 소승도 위원으로 위촉되어 지속적으로 발심하여 나옹왕사께서 창건, 중창하고 수행 정진하신 전국의 사찰들을 불적 답사하여 학문적인 접근과 아울러 출가 정신으로 돌아가 수행자의 본분사를 다시금 서원(誓願)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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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의 출가 서원이신 이익중생의 원력행을 언급해 보면, 현재 한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일체중생의 세간의 복락과 출세간의 무루의 복락의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발원하며 나옹왕사께서 쓰신 ‘행선축원(行禪祝願)’ 

『한국불교전서』권6,「나옹화상가송」p.746.

을 합송 올리고 있다. 나옹왕사께서 지으신 행선축원으로 새벽의 하루를 자비심으로 시작하며 또한 불가(佛家) 모든 사찰 불사 회향에 증명법사로 삼화상(지공,나옹,무학)을 모시고 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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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생구제의 서원(誓願)으로서 덧없는 인생을 경계하며, 세상 잡사를 잊고 탐욕을 벗어나 불보살님께 귀의하여 노는 입에 염불하여 서방정토를 구하라는 ‘나옹화상 승원가’를 비롯한 나옹화상가삼수(懶翁和尙歌三首) (완주가,백납가,고루가) 『한국불교전서』권6,「나옹화상가송」p.730.

를 지어 인생의 무상함을 알고 참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였다.


아울러 상근기 대중을 위하여 선불장(選佛場)에 이르는 지름길을 제시한 참선수행에 관한 열 가지 공부 방법(공부십절목) 『한국불교전서』권6,「나옹화상가송」p.722.

을 일러 주고 있다. 불교 수행에 있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크게는 두 길이 있다. 자력의 길과 타력의 길이다. 자력은 수행자가 스스로 계율과 선정, 지혜를 닦아 가는 길이요, 타력은 불보살의 자비 원력에 의지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위와 같이 자력수행의 길과 타력수행의 두 길을 자신의 근기에 맞게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유입되어 석가모니 화신으로 두 분을 들고 있다. 한 분은 조선 명종17년(1562)에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萬頃縣 佛居村)에서 태어나서 임진왜란 거쳐 인조 11년(1633)에 72세로 입적한 진묵대사가 있으며, 한 분은 영덕 창수 불미골에서 태어난 나옹왕사(1320∼1376)이다. 


나옹왕사께서는 고려 말을 대표하는 삼화상(三和尙)으로 불교계를 대표한 승려로서 태고보우(1301∼1382), 백운경한(1299∼1374)과 함께 새로운 선풍(禪風)을 진작시킨 분이다. 위와 같이 나옹왕사께서 출가 이후 전 생애에 걸쳐 출가 서원과 같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여 지공선과 임제선을 닦고 아래로는 중생구제의 원력행으로서 교학과 정토신앙을 함께 수행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방편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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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내용이 방대하여  영덕군 창수면 반송정 옆에 있는 사적비를 근찬(謹撰)하신 나옹왕사의 제자 각굉(覺宏)이 남기고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大韓佛敎曹溪宗總務院長)을 역임하신 가산(伽山) 지관(智冠)의 글을 옮겨 요약하였다. 금번 영덕문화원 주관 선비 아카데미의 특강법회에 나옹왕사 열반 651주년을 맞아 왕사의 사적비 행장을 싣고자 한다. 


2. 나옹의 행장

애민호국중흥불교나옹당혜근선각왕사비명 사적비는 영덕 창수면 반송정에 위치함


(愛民護國中興佛敎懶翁堂慧懃禪覺王師碑銘)


애민호국(愛民護國)으로 중생구제(衆生救濟)에 앞장섰던 나옹왕사(懶翁王師)의 전적(傳跡)에 대(對)해서는 문인각굉(門人覺宏)의 기록(記錄)한 행장(行狀)과 이색(李穡)이 찬(撰)한 양주(楊州)회암사(檜巖寺) 선각왕사비(禪覺王師碑)와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 보제사리석종기(普濟舍利石鐘記) 보제존자탑지석(普濟尊者塔誌石) 금강산(金剛山) 정양사(正陽寺) 삼한(三韓) 나옹명(懶翁銘) 부도(浮屠)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 등(等)에 자세(仔細) 전(傳)하고 있으므로 이 비(碑)에서는 중복(重複)을 피(避)하여 왕사(王師)의 애민호국(愛民護國)과 불교중흥(佛敎中興) 및 해외(海外)에서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하신 행적(行蹟)의 요해(要該)만을 기록하고자 한다.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물에는 연원(淵源)이 있으며 사건(事件)에는 원인(原因)이 있듯이 인간(人間)에게도 조종(祖宗)이 있다. 위민(爲民)선도(先導)를 실천(實踐)하신 공동(共同)사회(社會)선지식(善知識)의 행장(行狀)을 밝혀 우리들이 살아가는 거울로 삼고자 이 비(碑)를 세운다. 왕사(王師)의 휘(諱)는 혜근(慧懃) 호(號)는 나옹(懶翁) 구명(舊名)은 원혜(元慧) 실호(實號)는 강월헌(江月軒) 속성(俗姓)은 아씨(牙氏)아버지의 휘(諱)는 서구(瑞具) 어머니는 정씨(鄭氏)부인(夫人)이니 영산군(靈山郡)출신이시다. 


1371년 8월26일 공민왕(恭愍王)이 왕사(王師)로 책봉(冊封)하고 대조계종사선교도총섭근수(大曹溪宗師禪敎都摠攝勤修) 본지중흥조풍복국우세(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찬호(撰號)를 올렸고 입적(入寂)한 후 우왕(禑王)이 시호(諡號)를 선각(禪覺)이라 추증(追贈)하였다. 


어느 날 어머니 꿈에 금색(金色) 새매가 날아와 오색(五色)이 영롱(玲瓏)한 알을 떨어뜨려 품속으로 들어오는 태몽(胎夢)을 꾼 다음 임신(妊娠)하여 1320년 1월15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가산리(佳山里) 불암곡(佛巖谷)인근(隣近)에 작소(鵲沼) 또는 작연(鵲淵)에서 탄생(誕生)하였다.


20세 되던 해 서당(書堂)에서 공부(工夫)하던 동학(同學)친구(親舊)의 죽음을 계기(契機)로 부모(父母)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경(聞慶) 대승사(大乘寺) 묘적암(妙寂庵)에서 당대(當代) 명필(名筆)인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은사(恩師)로 출가(出家)한 스님은 양가(兩家)의 홍은(鴻恩)을 보답(報答)코자 철저(徹底)히 수행(修行)하며 대원(大願)을 세워 삼보전(三寶殿)에 발원문(發願文)을 지었고 지공(指空)으로부터 받은 문수최상승무생계법(文殊最上乘無生戒法)에 따른 육대서원(六大誓願)을 세웠으니 

첫째는 모든 중생(衆生)과 함께 성불(成佛)하지 않으면 나 또한 정각(正覺)에 오르지 않을 것이며 

둘째는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겪을 모든 고통(苦痛)을 내가 대신 받을 것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衆生) 의 혼매(昏昧)함을 지혜(智慧)로 바꾸어 줄것이며

넷째는 일체중생이 겪을 재난(災難)을 안온(安穩)으로 바꾸어 줄 것이며

다섯째는 모든 중생(衆生)의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계정혜(戒定慧)삼학(三學)으로 바꾸어 줄 것이며

여섯째는 모든 중생(衆生) 이 나와 함께 무상정각(無上正覺)에 이르도록 하여 주소서라고 발원(發願)하였다. 


1344년부터 4년간의 정진(精進) 끝에 크게 깨달음을 증득(證得)하였고 1348년 구법차(求法次) 중국(中國)으로 가서 북경시(北京市) 선무구(宣武區)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화상(指空和尙)을 친견(親見)하였다. 지공(指空)이 묻되 어디서 왔는가 고려(高麗)에서 왔습니다. 배를 타고 왔는가. 아니면 신통(神通)으로 왔는가. 신통(神通)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통(神通)을 나에게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왕사(王師)께서 지공(指空)의 앞으로 나아가 합장(合掌)하고 섰다. 지공(指空)이 또 묻기를 네가 고려(高麗)로부터 왔다하니 동해(東海)의 어느 쪽에서 보아야 한눈으로 고려(高麗)를 볼 수 있겠는가. 스님께서 아직 보시지도 않았거늘 어찌 경지(境地)를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너로 하여금 이곳으로 오게 하였는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고려불교(高麗佛敎)와 민생(民生)을 위해서 왔습니다. 하니 지공(指空)왈 여금(如今)여시(如是)하니 오역여시(吾亦如是)라 인가(認可)하고 곧 대중(大衆)에 참여(參與)시켰다.


1350년 8월 항주(杭州)정자사(淨慈寺)로 가서 평산처림선사(平山處林禪師)로부터 다시 인가(認可)받고 수법제자(修法弟子)가 된 후 보타락가산(普陀洛伽山)을 거쳐 아육왕사(阿育王寺)에서 오광장로(悟光長老)를 명주(明州)에서 무상(無相)과 고목화상(枯木和尙)을 1352년에 무주(婺州) 복룡산(伏龍山)에서 천암화상(千巖和尙)을 송강(松江)에서 요당(了堂)과 박암화상(泊巖和尙)등 제방(諸方)의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친견(親見)한 후(後) 1352년 10월15일 원나라 순제(順帝)의 명(命)으로 원도(元都)의 광제사(廣濟寺)에서 개당설법(開堂說法)을 가졌다.


1358년 봄에 귀국(歸國)한 후 오대산(五臺山)과 한성(漢城)에서 1361년 신광사(神光寺) 구월산(九月山) 용문산(龍門山) 원적산(元積山) 1366년에는 금강산(金剛山)1367년에는 청평사(淸平寺)에서 1369년에는 다시 오대산(五臺山)에 주석(住錫)하였다.

1370년 봄 회암사(檜巖寺)에서 수법사(受法師)인 지공화상(指空和尙)의 사리(舍利)를 전(傳)해 받았다. 그 해 4월15일 광명사(廣明寺) 하안거(夏安居)에 참여(參與)하였으며 같은 해 9월 국가(國家)에서 시행(施行)하는 공부선(功夫選)을 주관(主管)하였고 1371년 8월28일 회암사(檜巖寺)를 떠나 9월27일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에 도착(到着)하여 주석(住錫)하던 중 1372년 가을 홀연(忽然)히 너의 나라 삼산양수지간(三山兩水之間)에 절을 지으면 불법(佛法)이 대흥(大興)하리라는 지공(指空)의 지시(指示)를 회상(回想)하고는 회암사(檜巖寺)의 주지(住持)가 되어 지공(指空)의 사리탑비(舍利塔碑)를 세우고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하였다.


1375년 9월 우왕(禑王)의 즉위(卽位)와 함께 왕사직(王師職)을 사퇴(辭退)하였으나 왕은 즉시(卽時) 직인(職印)과 함께 반려(返戾)하였다.


1376년 4월15일 회암사(檜巖寺) 중창(重創)불사(佛事)의 낙성법회(落成法會)를 마치고는 다시 사퇴서(辭退書)를 상달(上達)하였다. 그 이후(以後)로는 더욱 왕사(王師)의 도덕(道德)을 흠모(欽慕)하여 서울을 비롯한 제방(諸方)의 신남(信男)신녀(信女)가 회암사(檜巖寺)로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불교(佛敎)가 흥성(興盛)하는 대회상(大會上)을 시기(猜忌)한 유생(儒生)의 무리중 사헌부(司憲府) 대간(臺諫)이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位置)한 회암사(檜巖寺)에 불자(佛子)들의 왕래(往來)가 계속(繼續)되어 분별(分別)없는 맹신(盲信)으로 가업(家業)을 폐(廢)할 지경(地境)에 이를까 두렵다하여 이 기회(期會)에 나옹화상(懶翁和尙)에 신도(信徒)들의 접촉(接觸)을 금(禁)할 것을 주청(奏請)하였다.


마침내 교지(敎旨)를 내려 멀리 떨어진 밀양(密陽) 영원사(塋原寺)로 이석(移錫)케하여 호송관(護送官)탁첨(卓檐)으로 하여금 배로 호송(護送)하던 중 피로(疲勞)를 빙자(憑藉)하여 며칠 쉬어가기를 청(請)하여ㅓ 신륵사(神勒寺)에 잠시(暫時) 머물게 되었다.


1376년 5월15일 진시(辰時) 가사장삼(袈裟長衫)을 갈아 입고 불전(佛前)에 향(香)을 피운 후 여주(驪州)군수(郡守)와 대중(大衆)을 불러 앉히고 왕사직인(王師職印)을 군수(郡守)에거 전(傳)한 다음 혜명호지(慧命護持)와 애민호국(愛民護國) 그리고 출가초지(出家初志)를 잊지 말고 부치런히 정진(精進)하라고 부촉(咐囑)한 다음 조용히 입적(入寂)하시니 세수(世壽)57세요 법랍(法臘)은 삼십팔하(三十八夏)였다. 입적(入寂)하실 때 오색(五色)서광(瑞光)이 산정(山頂)을 덮었고 왕(王)이 하사(下賜)하여 스님이 타고 다녔던 백마(白馬)는 3일전부터 먹지 않고 슬피울었다고 전(傳)한다.


다비(茶毘)한 후 화장장(火葬場)에서 치아(齒牙)와 정골(頂骨) 및 사리(舍利)155과와 기도(祈禱) 끝에 다비장(茶毘場)백보경내(百步境內)의 나뭇가지와 암상(巖上)에서 분신사리(分身舍利)558과를 수습(收拾)하여 사리탑(舍利塔)은 회암사(檜巖寺)에 치아(齒牙) 및 정골(頂骨)은 신륵사(神勒寺)에 각각(各各)봉안(奉安)하였다.


왕사(王師)의 입적(入寂) 후 632년을 맞이하여 장육사(莊陸寺)를 비롯한 왕사(王師)의 유적지(遺蹟地)와 사상(思想)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기념사업회(記念事業會)가 발족(發足)되고 즈음에 왕사(王師)께서 애민(愛民)호국(護國)하신 큰 덕(德)을 기리고자 김병목(金炳睦)영덕군수(盈德郡守)의 발의(發意)와 김관용(金寬容) 경북지사(慶北知事)의 후원(後援)으로 사부대중(四部大衆)의 뜻을 모아 왕사(王師)께서 출가시(出家時)지팡이를 꽂아 두었다고 전(傳)해 오는 반송정(盤松亭)에 이 비(碑)를 세우게 되었다. 


왕사(王師) 행적(行蹟)의 요해(要解)만을 이상(以上)과 같이 약술(略述)하고 다음과 같이 명(銘)하는 바이다. 명왈(銘曰)

애민흥불(愛民興佛) 원력(願力)으로 다겁수행(多劫修行) 공덕(功德)닦아 대해(大海)같은 서원(誓願)으로 영해(寧海)땅에 탄생(誕生)할 때 금색(金色)새매 알을 주는 태몽(胎夢)으로 탁태(托胎)할세. 아서구(牙瑞具)를 아버지로 정부인(鄭夫人)을 모친(母親)삼다 사서삼경(四書三經) 통달(通達)하여 경세지략(經世智略) 탁월(卓越)한들, 슬프도다 나의 친구 요사(夭死)함을 어이할꼬 생사일편(生死一片) 부운기(浮雲起)요 사야일편(死也一片) 부운멸(浮雲滅)일세. 


출가시(出家時)에 부모만류(父母挽留)뿌리치고 떠나갔다 사불산(四佛山)의 묘적암(妙寂庵)서 요연선사(了然禪師) 은사(恩師)삼고, 삭발염의(削髮染衣) 득도(得道)한후 여구두연(如求頭燃) 정진(精進)하다 구법중국(求法中國) 법원사(法源寺)서 지공화상(指空和尙) 친견(親見)하고, 축착합착(築著磕著) 줄탁동시(踤琢同時) 확철대오(廓徹大悟)하신 후에 지공화상(指空和尙) 인가(認可)하되 여금여시(汝今如是) 오역여시(吾亦如是) 나옹답왈(懶翁答曰) 미즉중생(迷則衆生) 오즉진찰(悟則塵刹) 본자법신(本自法身) 평산처럼(平山處林) 갱인(更印)하되 수법인연(受法因緣) 맺으시고, 문수보살(文殊菩薩) 무생계(無生戒)를 왕사(王師)께서 계승(繼承)하다. 


상구보리(上求菩提) 선교겸수(禪敎兼修) 육대원(六大願)을 돈발(頓發)하니, 일체중생(一切衆生) 공성불도(共成佛道) 일체중생(一切衆生) 고보대수(苦報代受) 일체중생(一切衆生) 지혜명달(智慧明達) 일체중생(一切衆生) 왕생극락(往生極樂) 일체중생(一切衆生) 삼학구족(三學具足) 일체중생(一切衆生) 동성정각(同成正覺) 광제사(廣濟寺)서 개당(開堂)하곤 구법(求法)길을 회향(廻向)하고, 전법(傳法)위해 귀국(歸國)하여 공민광(恭愍王)의 왕사(王師)되어 공부선(功夫選)을 주관(主官)하고 애민호불(愛民頀佛) 잊지 않다.


세수오칠(世壽五七) 법랍삼팔(法臘三八) 왕사직(王師職)을 사임(辭任)하고 대중(大衆)에게 부촉(咐囑)한 후 가부(跏趺)하고 입적(入寂)하니, 왕사백마(王師白馬) 절사비곡(絶嗣悲哭) 오색서운(五色瑞雲) 산정(山頂)덮다. 


회암사(檜巖寺)에 사리탑(舍利塔)을 신륵사(神勒寺)엔 정골봉안(頂骨奉安), 왕사적후(王師寂後) 632년(六三二年) 평화(平和)적인 남북통일(南北統一) 하루속히 이루도록 해마중의 영덕(盈德)땅에, 사부대중(四部大衆) 뜻을 모아 이 정석(貞石)을 세우노니 동해(東海)바다 고갈(枯渴)하고 허공계(虛空界)가 다하도록, 비로자나(毘盧遮那)진법신(眞法身)이 온 국민(國民)을 지켜지다.


불기2552(2008)년10월21일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원장 가산 지관 근찬

                          (大韓佛敎曹溪宗總務院 院長 伽山 智冠 謹撰)


나옹왕사 문도회장 서남사 주지 철학박사 현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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