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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의 일대사 인연, 목은 이색 법신사리로 기록 전시하다. (10월2일 ∼10월6일, 장소 영덕 서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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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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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興郡神勒寺普濟舍利石鍾記 

禪覺王師普濟尊者之示寂 于驪興神勒寺也, 靈異赫然, 疑者釋, 信者益奮. 謀所以起敬於千載之下, 則堂而垂其像, 鍾而厝舍利, 盖無所不至矣. 曰覺信者, 實幹石鍾. 而曰覺珠者, 求燕石, 將載其事, 而徵記於穡曰, “廉政堂在川寧, 往來吾寺. 珠告其故, 公欣然曰, ‘吾如京, 當爲上人請一言於韓山子, 韓山子必不讓矣’. 願先生賜之言.


선각왕사(禪覺王師) 보제존자(普濟尊者)가 여흥(驪興)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하였는데, 신령스럽고 특이함이 혁혁하니 의심한 자는 〈의심을〉 풀고 믿는 자들은 더욱 분발하여 도모하기를 공경함을 일으켜 천년 후에까지 이르게 하고자 하여, 당〈을 세워〉 그 상을 모시고 〈석〉종에는 사리(舍利)를 두었으니 대게 이르지 못할 바는 없을 것이다. 각신(覺信)이라고 하는 자는 석종(石鐘)을 맡았고, 각주(覺珠)라고 하는 자는 연석(燕石) 구하며 장차 그 일을 담고자 비문을 〈나〉 색(穡)에게 글[記]을 청하여 말하기를, “정당문학 염공[廉政堂]께서 이천[川寧]에 있으면서 우리 절을 왕래하였습니다. 각주(覺珠)가 연유를 고하였더니 공(公)이 기꺼워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개경(開京)에 가면 마땅히 왕사를 위해 한 말씀을 한산자(韓山子, 이색)에게 청할 것이니, 한산자는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선생께서는 말씀을 내려주소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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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비문은 여주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나옹왕사가 입적하고 목은 이색이 기록한 전면 일부의 글이다. 고려 말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 나옹혜근(懶翁慧勤, 1320~1376)과 성리학적 신진사대부의 학문적 지주였던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은 경북 영덕군 태생이다. 보물 229호로 지정된 이 석종비는 고려 우왕 5년인 1379년 세워졌으며, 비석은 전체 높이 212cm, 석종비의 높이 121cm, 너비는 61cm의 크기를 가지며, 지대석과 3단의 장방형 대석 위에 비신을 세워져 있다. 석종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양옆에 화강암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들은 목조건물의 기와 지붕을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비문의 양면에는 나옹선사의 일생과 사상, 업적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진당시와 추모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앞면을 더 살펴보면,


予曰. 江月軒,普濟之所居也. 普濟之身, 旣火之矣, 而江與月猶夫前日也. 今神勒臨長江, 石鍾峙焉, 月出則影倒于江, 水色, 燈影篆香, 交襍乎其中, 所謂江月軒, 雖歷墨劫, 如普濟之生存也. 今夫普濟舍利, 散而之四方, 或在崔嵬雲霧之中, 或在烟塵之內, 或頂而馳, 或臂而宿, 其所以奉持之者, 比之普濟生存之日, 不啻百倍加矣. 况神勒爲入寂之地, 宜珠師之盡心於舍利也. 神勒寺, 由普濟大闢道場, 將永世不墜. 石鍾之固, 非獨與神勒爲終始, 又將與此江此月, 爲無窮矣. 嗚呼. 空華非瞥, 墨刧非闊, 理也, 而世界則有成壞焉. 世界雖有成壞, 而人性自若也. 普濟之舍利, 將與世界有成壞歟. 將與人性, 爲自若歟. 雖愚夫愚婦, 亦知所擇矣. 後之禮舍利者, 歆普濟之高風, 歸而求之其心, 則始可以報普濟之恩矣. 不然, 普濟之道, 自道也, 於我何也哉. 是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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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강월헌(江月軒)은 보제(普濟) 선사가 머문 곳이다. 보제의 육신은 이미 불에 타버렸으나, 강과 달은 오히려 전일(前日)과 〈다름이 없다〉. 지금도 신륵사(神勒寺)는 장강(長江)가에 있으며 석종(石鐘)은 우뚝 서 있는데, 달이 뜨면 그 그림자가 강물 속에 거꾸로 비치어 천광(天光)과 수색(水色), 등 그림자와 향의 연기가 그 가운데 서로 섞이니, 이른바 강월헌(江月軒)은 비록 묵겁(墨劫)이 흘러도 보제(普濟)가 살아있을 때와 같을 것이다. 지금 대저 보제의 사리(舍利)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혹은 높고 높은 구름과 안개 중에 있고, 혹은 〈여염(閭閻)의 연기와 티끌 안에 있으며, 혹은 머리에 이고 다니고 혹은 팔에 〈달고〉 지내기도 하니, 그 받들어 보존하는 바를 보제의 생존 때와 비교하면 겨우 백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신륵사는 입적(入寂)한 곳이므로, 마땅히 각주(覺珠) 스님이 사리(舍利)에 마음을 다하였다. 신륵사는 보제(普濟) 스님이 크게 연 도량이니 장차 영세토록 쇠하여지지 않을 것이다. 석종도 견고하여 신륵사와 더불어 시종(始終)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장차 이 강과 이 달과 더불어 무궁할 것이다. 오호라! 공화(空華)는 잠깐 보이는 것이 아니며, 묵겁(墨劫)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닌 것이 이치이니, 세계에는 완성과 무너짐이 있다. 세계가 비록 완성과 무너짐이 있어도 인성은 자약(自若)한 것이다. 보제(普濟)의 사리(舍利)가 장차 세계와 더불어 완성됨과 무너짐이 있을 것인가, 인성(人性)과 같이 자약(自若)할 것인가. 비록 어리석은 남녀일지라도 택할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후세에 이 사리에 예의를 갖추는 사람들은 보제(普濟) 스님의 고상한 풍모를 흠모하고 귀의하여 그의 마음에서 구(求)하여야 비로소 가히 보제(普濟)의 은혜에 보답함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제의 도는 자신만의 도이고, 나에게는 무엇이 되겠는가? 이를 기록한다.


推忠保節同德賛化功臣三重大匡韓山君領藝文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 李穡 撰.

輸忠賛化功臣大匡上黨君進賢館大提學 臣 韓脩 奉敎書.

蒼龍己未五月十五日, 門人覺珠·覺惺·覺宏等, 立石. 刻手李仁厸.


지면상 전면에 대한 기록을 위와 같이 언급하고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한산군 영예문춘추관사 겸성균대사성(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 三重大匡 韓山君 領藝文春秋館事 兼成均大司成) 이색(李穡) 찬(撰)하였다. 수충찬화공신 대광 상당군 진현관대제학(輸忠贊化功臣 大匡 上黨君 進賢館大提學) 신(臣) 한수(韓脩) 봉교(奉敎)하여 글씨를 썼다.        창룡기미(蒼龍己未, 1379) 5월 15일 문인(門人) 각주(覺珠)·각성(覺惺)·각굉(覺宏) 등이 비석을 세웠다. 각수(刻手)는 이인린(李仁厸)이다.


진실로 선을 깨친이시며 展也禪覺

기린의 뿔이로다  惟麟之角

임금의 스승이요  王者之師

인천의 눈이로다 人天眼目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萬衲宗之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如水赴壑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而鮮克知 所立之卓


신령한 새매 꿈이 隼夢赫靈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在厥初生

용신이 초상을 호위함이여 龍神護喪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終然允臧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矧曰舍利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다니 表其靈異

강은 넓게 트였는데 江之闊矣

달은 밝고 밝았도다 皎皎明月


공인가 색인가 空耶色耶 

위아래가 휜히 트였나니 上下洞徹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邈哉高風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終古不滅


 위의 게송은 회암사에 모셔져 있는 보제존자(普濟尊者) 나옹왕사의 탑명(塔銘) 마지막 게송으로서 목은 이색께서 봉교찬(奉敎撰)한 것으로 위의 글은 스승(나옹왕사)의 제자 각우(覺玗) · 각연(覺然) · 각변(覺卞) 등 문도들이 탑명(塔銘)을 부탁하여 목은 이색께서 비명(碑銘)을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의 탑비(塔碑)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에 있다. 고려 폐왕(廢王)인 우왕(禑王) 정사년(1377)에 세웠으며, 비의 높이는 5척이며 너비는 3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隸書題額字)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篆書)로 음기(陰記)한 것이 지금은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고 한다.


나옹왕사는 지금의 영덕군 창수면이고 목은 이색은 영덕군 영해면 출신이며, 입적 역시 여주(여강) 신륵사 일대에서 입적하였다. 나옹왕사가 1376년 입적 후 기록한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와  회암사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왕사의 탑명(塔銘) 두 비문은 목은 이색이 찬술 기록한 것이다. 이번에 여강서도회가 주최하고 여주세종문화재단과 영덕불교사암연합회에서 후원한 여강서도회전은 9월18일 여주목마에서 1차 전시를 봉행하고 2차 서남사에서 10월2일 오후2시부터 6일까지 전시를 하고자 한다. 특별히 보제존자석종비와 스님의 제자 각굉(覺宏)이 기록한 나옹왕사의 행장을 함께 사농 전기중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나옹왕사 서체를 전시하면서 700여 년 나옹왕사께서 참방 떠나는 심선자(心禪者)를 떠나보면서 남긴 글을 옮겨본다.


叅方問道別無他 

여러 곳을 나아가 도를 묻는 것, 다른 목적아니요

只要當人直到家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이네

打碎虛空無一物 

허공을 쳐부수어 한 물건도 없으면

百千諸佛眼中沙 

백천의 부처도 눈 속의 모래이리라


영덕불교문화발전연구원장 서남사 주지 철학박사 覺呑 현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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