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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한불교법화종 전통사찰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참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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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20.08.03 09: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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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삼보하옵니다.
지난 7월 21일 통영 안정사의 불적답사를 시작으로 이번에 2번째 전통사찰로서 경남도청에 인접한 도심속의 전통사찰 보물 제 436호 석조비로자나좌불상(石造毘盧遮那坐像佛)모시고 있는 불곡사를 불적답사로 정하였다.
 
두 번째 답사를 가기 전에 불곡사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다.  불곡사의 기록은 네이버의 기록과 일반사전과 불교사전을 살펴보았지만 불교사전으로 「가산불교문화연구원」 『伽山佛敎大辭林』 2009년에 펴낸 기록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 권11,p.145∼146. 불곡사의 역사와 비로전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과 불곡사일주문 그리고 창건주인 진경스님의 기록까지 모두 그대로 옮겨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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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사(佛谷寺)
불곡사(佛谷寺)는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비음산(飛音山) 남쪽 기슭에 있는 절. 신라 경명왕(재위917∼923)때 구산선문 중 하나인 봉림산파(鳳林山派)를 개창한 진경대사(眞鏡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929년 김우담(金雨潭)스님이 파손된 불상과 석물, 기와조각이 산재해 있던 절터에서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6호)을 발견하고 비로전을 건립하여 중창하고, 인근의 사람들이 ‘부처골’이라 부르는 것에 따라 절 이름을 불곡사라라 하였다.


1943년에는 웅천향교(熊川鄕校)에 남아있던 창원 객사문(客舍門)을 옮겨와 절의 일주문으로 삼았다. 1974년에 취산(翠山)스님이 중수하고 1988년에 비로전을 전면적으로 보수하였다. 1989년에 일주문을 새로 단청하고 1996년에 관음전을 신축하였다. 가람은 비로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 명부전 · 칠성각 · 세음루(洗音樓) · 정심당(靜心堂) · 일주문 등으로 구성된다.
 성보문화재로는 보물 제436호 불곡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시도유형문화재 제133호(경남) 불곡사일주문이 있다.

 

▶진경대사(眞鏡大師)
심희(審希) 854∼923. 신라 후기 스님으로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창원 봉림사(鳳林寺)를 창건한 개산조. 호는 법응(法應), 시호는 진경(眞鏡), 탑호는 보월능공(寶月凌空), 속성은 김씨, 본관은 김해, 아버지는 배상(盃相0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854년(문성왕16)12월10일에 태어났다.

9세 때인 863년(경문왕3)에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高達寺)로 찾아가 원감대사(圓監大師) 현욱(玄昱)을 은사로 하여 스님이 되었다. 그 후 19세 때 비구계를 받은 후, 24세까지 전국의 선지식과 명산대찰을 두루 참방하고, 888년(진성여왕2)부터 897년(효공왕1)까지 송계(松溪)에서 정진하다가 다시 설악(雪嶽)에서 후학을 지도하니 학인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이 때 스님의 이름을 듣고 흠모하던 진성여왕(眞聖女王)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다시 명주(溟州)를 거쳐 진례(進禮:지금의 김해시 일대)에 이르니 진례성제군사(進禮城諸軍事)인 김율희(金律熙)가 절을 지어 헌납하고 거기에 주석토록 하였다.


이어 효공왕(孝恭王897∼912)이 봉림사라고 사액(寺額:현판)을 하사하였고, 봉림사의 확장불사에 김인광(金仁匡)이 크게 도왔다. 경명왕(景明王)이 918년에 궁중으로 초빙하니, 사자(師資)의 예를 받고 치국안민의 통치이념을 설해 주었으며 법응(法應)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923년(경명왕7) 4월24일 이른 아침에 대중을 모아놓고 이르기를, “모든 법은 공이고 온갖 인연은 공적하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마치 뜬구름과 같나니, 너희들은 부지런히 정진하고 슬퍼하지 말라. 諸法皆空 萬緣俱寂 言其寄世 宛若行雲 汝等勤以住持 愼無悲喪”라고 하고 봉림사 선당에서 조용히 입적하니 세수 70, 법랍 50세였다.

문하에서 법을 전해받은 제자가 5백여 명인데, 그 중 경질선사(景質禪師)가 상수이다. 박승영(朴昇英)이 비문을 짓고, 제자인 행기(幸期)대사가 왕명에 의해 썼으며, 최인연(崔仁渷)이 전액을 쓰고 성림(性林)이 각자하여 924년(경명왕8)봉림사에 세웠다.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파손된 것을 후에 다시 세웠다. 오래 전에 이미 절은 폐사되고 일제강점기 때 비를 경복궁(景福宮)으로 옮겼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1963년 보물 제363호로 지정되었다.

불적답사 가는 날 7월24일 금요일 지난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마 비는 창원으로 내려가는 4시간 여 동안 계속하여 내렸다. 평소시간보다 우중(雨中)이라 한 30여분 더 소요되어 오전 10시30분에 불곡사에 도착하였다. 불곡사는 지난해 2019년 종단 창종법회에 소승이 사회를 보면서 그때 하얀 윗옷과 분홍치마를 예쁘게 입은 합장단을 모시고 온 스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불곡사 주지스님이신 도홍스님으로 그날 인연이 되어 불곡사를 방문하여 부처님을 참배하고 주지스님께 차 한 잔 대접받는 인연으로 이번에 두 번째 찾는 불곡사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 도량을 살펴보니 간판이 눈에 먼저 띠었다. ‘전통사찰 경남 제100호 신라고찰 비음산 불곡사 大韓佛敎法華宗 佛谷寺’ 사찰간판이 도량전체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일주문을 향하여 오르니 ‘南無阿彌陀佛’ 여섯 글자가 첫눈에 들어왔다. “한량없는 광명의 세계로, 한량없는 수명의 세계로 귀의하라는 의미와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정진하여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가 무한한 광명의 세계요 무한한 수명의 세계를 자각하는 두 길”의 아미타불명호를 새겨놓았다.


南無阿彌陀佛 명호(名號)를 지나 좌측에는 ‘우담료(雨潭寮)’전각이 보이고 ‘비음산불곡사’(飛音山佛谷寺)일주문 편액과 주련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시내 중심지라 공기가 탁할 줄 알았는데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영덕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도심속의 아란야라 할까? 창건주 진경대사의 천년 후의 안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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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사일주문(佛谷寺一柱門)
조선 말기 일주문. 시도유형문화재 제 133호(경남). 높이 2.2m.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불곡사에 있다. 원래 창원 객사문(客舍門)이었다고 전하며, 웅천 향교에 있던 것을 1943년에 우담(雨潭)스님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기둥 위의 공포는 4출목의 복잡한 포작(包作)으로 짜여있고 조각도 매우 화려한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용두(龍頭)모양의 쇠서(牛舌)와 쇠서 아래 위의 연꽃 조각 등으로 미루어 조선 말기의 건축물로 추정된다. 1977년 해체, 복원하였다.


世尊坐道場 淸靜大光明 比如天日出 照耀大千界
부처님께서 도량에 앉으시매 맑고 깨끗한 큰 빛을 발하시네.
마치 천개의 해가 한꺼번에 떠 오른 듯 온 세상을 비추시네.


無量億千劫 導師時乃現 佛今出世間 一切所瞻奉
한량없는 억천 겁에 도사가 그때에 출현하시거늘,
부처님이 이제 세간에 나오시니 모든 이들이 우러러 받들도다.


『화엄경』 제6품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의로 부처님께서 출현하심을 보인 게송이다. 게송하나를 더해본다. 진경대사의 화현이 이 도량에 다시 분신(分身)으로...


일주문을 지나 오르니 ‘세음루(洗音樓)’의 누각이 보이고 누각에 또 주련이 한 눈에 들어온다.


一葉紅蓮在海中 碧波深處現神通 昨夜普陀觀自在 今日降赴道場中
한 떨기 붉은 연꽃 하나 바다위에 떴으니 푸른 물결 깊은 곳에 신통 나타나네
지난밤에 보타산에 계시던 관자재보살님 오늘은 이 도량에 강림하시네.

 

위의 게송은 우리들의 불성 즉 여래의 태(tathagatagarbha)가 연꽃으로 들어난 것이다. 『화엄경』「입법계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포탈라카potalaka)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도량이 지금 여기 불곡사에 있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니 불곡사의 주전인 ‘비로전(毘盧殿)’이 보인다. 현판은 예서체로서 ‘광개토대왕비체’ 인 듯하다.? 글씨에 대한 전혀 지식이 없지만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아주 아름다운 불곡사에 어울리는 품격있는 글씨로 보인다. 법당 안으로 둘어가서 보물 제436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친견하고 잠시 입정에 들었다. “이 도량에 인연있는 모든 분들 원컨대 불곡사 부처님 친견한 공덕으로 널리 일체에 미치고 저희들 모두가 더불어 세속의 각자 소원하는바 이루시고 구경에는 다함께 불도를 이루어 하옵소서!”라고 祝願念하였다. 


 비로전 앞 주련 글씨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500여 년 전에 인도의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왕비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출가하여 여섯 해 만에 새벽별을 보고 오도(悟道)한 내용이다.

世尊當入雪山中 一坐不知經六年 因見明星云悟道 言詮消息遍三千
부처님께서 설산에 한 번 들어가시니 한 번 자리 하사 6년이 지남을 알지 못하셨네. 명성을 보고 크게 깨달으시니 한 말씀에 그 소식 삼천세계에 두루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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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곡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佛谷寺石造毘盧舍那佛坐像)
 통일신라시대 석조비로자나불상. 보물 제436호 불신 높이 103cm, 대좌높이 64cm. 경상남도 창원시 대방동 불곡사 비로전에 안치되어 있다. 광배가 결실되었으나 불신과 대좌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얼굴은 작고 둥근 편이나 머리의 육계(肉髻)가 낮아지고 불신(佛身)의 어깨와 두 다리의 폭은 좁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양감이 줄어들고 왜소화된 모습이다.


 두 손은 가슴 앞에 꼭 붙여서 오른손으로 왼손 둘째 손가락을 감싸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있는 듯한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는데, 9세기 중엽경의 비로자나불상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통견(通見)의 법의는 양어깨 위에 몇 개의 주름이 접힌 채 가슴 위로 흘러내려 반원형의 주름이 두 다리 위에까지 늘어져 있으며 가슴 위로는 내의(內衣)와 내의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었다. 이와 같이 반원형의 옷 주름이 결가부좌한 다리와 발까지 완전히 덮으면서 늘어져 있는 형식은 863년경에 조성된 대구 동화사 비로암(毘盧庵) 석조비로자나불상과 충청북도 괴산 각연사(覺淵寺)에 있는 9세기 후반 석조비로자나불상 등에서도 발견된다.

또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경상북도 예천 청룡사(靑龍寺)의 촉지인(觸地印)석불좌상이난 경상남도 밀양 무봉사(舞鳳寺)의 촉지인 석불좌상에도 볼 수 있는 것으로 9세기 후반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옷주름 형식이다. 대좌는 통일신라시대에 휴행한 전형적인 팔각 연화대좌로 상대 · 중대 ·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는 복잡한 꽃 무늬가 장식된 중판앙련문(중판(重辦仰蓮紋)으로 이루어졌고 팔각의 중대에는 각 면에 광배를 갖춘 좌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밑에 별석(別石)의 받침이 놓여 있다. 하대는 복련(覆蓮)이 장식되었으며 그 아래 지대석의 팔면에는 안상(眼象)안에 사자(獅子)일곱 구와 화판(花瓣)이 조각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비로자나불상이 대부분 경상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던 것에 반하여 경상남도에서 조성된 비로자나불상이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우담(雨潭)스님
 우담(1882∼1968) 김재희(金在希) 스님은 1882년 밀양 삼량진 출생 11세 창원 성주사 동진출가 1914년 범어사 성월선사로부터 비구계 수지 김해 진영포교당 창건 강서 흥국사, 창원 불곡사 중창불사 불모산 범패 완성 후 후학에 전수 스님의 제자로 명해(溟海)정기용(1924∼1998), 금해(金海)이명우(1916∼), 춘해(春海) 이만조, 경해(慶海) 안규석 스님등이 법맥을 전하고 우담스님의 유훈과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우담종문회가 설립되어 경남지역의 포교와 불교발전을 위함과 동시에 큰스님의 법음을 이어가고 있다.


 비로전의 주존을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주지스님께서 계시는 비음선당(飛音禪堂)에서 따뜻하고 정갈한 차 한 잔으로 법담(法談)을 나누었다. 불곡사 도홍주지스님께서는 창원시불교연합회장소임을 맡아 4년간 원만하게 회향하였으며 지역불자들에게 항상 ‘본심을 알아차리고 하심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시면서  창원시 불교현안에 대한 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 하시면서 대중교화 전법도생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지역교구나 총무원의 종단소임은 물론 그 어떤 직책도 맡지 않고 후학들에게 양보하시면서 그 역량을 지역의 불교발전에 헌신하신 것으로 알 고 있다.  앞으로 지역불교발전에 헌신한 힘을 나누어 어려운 시기에 종단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 종단발전을 위한 애종심(愛宗心)을 내어 달라고 차담을 하면서 말씀드리고 일어섰다.


 대한불교법화종의 전통사찰 두 번째 불적답사길을 회향하면서 그래도 종단의 미래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수행자의 본분사(本分事)를 다하시는 불곡사 도홍주지스님과 같은 올 곧게 정진하는 모습에 뵙고 나니 법화종문(法華宗門)의 연꽃은 다시 만개하리라고 생각된다.
 
대한불교법화종 종헌종법 총칙 제3조에 “본종(本宗)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대중교리(大衆敎理)를 봉체(奉體)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과 교관중수(敎觀重修)를 개시오입불지견(開示悟入佛之見)하는 제세안민(濟世安民)과 홍법호국(弘法護國)의 종지(宗旨)로 한다.”라고 한다.
 
 대한불교법화종의 법기(法紀) 중흥년(重興年)의 원년을 1946년으로 보고 있다. 대각국사(大覺國師)의천(義天께서 수립(樹立)하신 정통 법화종문(法華宗門)으로 소의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통하여 교관중수(敎觀重修)하고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이익중생(利益衆生)의 원력행(願力行)으로 재도약하길 발원해 본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아미타불!!!


영덕불교사암연합회장. 대한불교법화종 동해교구 분원장 현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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