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신문 > 종교
URL 복사
그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通州)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平江府)에 이르러 휴휴암(休休庵)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나옹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 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와 오호(五胡)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8월에 정자선사(淨慈禪寺)에 이르렀는데, 그곳의 몽당(蒙堂) 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禪法)이 있는가?"
나옹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扶桑國)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나옹스님이 곧 평산처림(平山處林)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나옹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나옹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나옹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나옹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三韓)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佛祖)와 걸맞다. 종안(宗眼)은 분명하고 견처(見處)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의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 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根)이 깨끗해 보리(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11년(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湖上)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고 용맹 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을 들고 천암(千巖)의 대원경(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URL 복사
KBB한국불교방송 방송/신문/매거진 무단 저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 출처 'KBB한국불교방송'을 반드시 표시하셔야 합니다.
KBB한국불교방송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제보 053-1670-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