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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 관련 사찰 불적답사 경상도편 "용흥사(龍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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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0.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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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사(龍興寺) 나옹왕사 중창 사찰 주소 경북 상주시 지천1223-35

 

용흥사 홈페이지에서 용흥사 연혁이 있어 여기에 싣는다. 경북 상주의 옛 지명은 상산(尙山)이며 상산지(尙山誌) 고적조(古蹟條)에는 상주 성 밖 사방에 큰 절이 있어 사장사(四長寺)라 하였다.

 

즉 남장, 북장, 갑장, 승장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악산(淵獻山)을 일명 갑장산(甲長山)이라 하기도 한다. 또한 상주는 삼악(三 嶽)이 있어 산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즉 남쪽의 연악산, 서쪽의 노악산, 북쪽의 석 악산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속리산의 지맥이며, 주봉에서 장장 백여 리를 뻗어 내려왔다.

 

용흥사는 연악산 중턱에 서향(西向)해 있으며, 신라 39(문성왕 1)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절 앞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물속에서 용이 승천하여 올라간 이후로 용흥사(龍興寺)라 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큰 법당인 극락보전은 1805년 지은 중수상량문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폐허화된 것을 공민왕 때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중창하였다. 1647(인조 25) 인화화상(印和和尙)이 중 건, 1680(숙종 6) 홍치대사(弘治大師)가 중수하였으며, 1707년 도인(道仁)이 중건하였다.

 

1806(순조 6) 정화(淨和)가 중수하였으며, 1967년 종덕 비구니 스님에 의하여 5중수, 이때 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자씨(姉氏) 박재희 청신녀의 신심으로 쓰러져가던 극락보전이 중창되 었다. 1982년에는 1976년 극락보전 후불탱화의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오층석탑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1년에는 비구니 선용(善用)스님에 의하여 육중수 되었고, 선용스님이 재임기간 동안 극락보전 앞에 진신사리, 5층 석탑조성, 삼 존불 개금불사, 30나한상 도분, 백운선원 건립, 요사채 건립, 진입로 확장을 하면서 용흥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락보전 내에는 괘불이 모셔져 있는데 2003 41일 국가지정문화재 제1374호로 지정되 었다. 그 크기는 총 높이 1,003cm, 총 폭 620m로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괘불 탱화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색채와 선이 선명하여 불 교학계와 미술학, 역사학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괘불 탱화는 오랜 가뭄이 들었을 때, 대중이 함께 모시고 기우제를 드리면 곧 비가 내리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법당 중수 시에 신중탱화 틀 속에서 진신사리가 발견되었는데, 이 신중탱화는 1976년에 도난당했다가 3년 만에 세관에서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적발하여 다시 법당에 모시게 된 것이다. 이때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재일교포 김철유 불자의 도움으로 5층 석탑으로 조성하게 되었으니 이는 득과 실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5층 석탑의 가운데 부분은 비가 많이 내려도 젖지 않아 보는 일들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경내 극락보전 외의 전각으로는 나 한전과 삼성각 및 백운선원 등이 있다.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30나한상이 모셔져 있는데, 보통 16나한을 모시는 것 이 일반적인 관례인 것을 볼 때 30분이 모셔져 있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는 용흥사 인근 사찰이 폐사되면서 그곳에 모셔졌던 나한님을 모셔올 때 두 분이 파불이 되어 모시지 못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일설에는 6·25 사변 때에 두 분을 도난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각인 삼성각에는 칠성단과 독성단, 산신단이 모셔져 있고, 백운선원은 1983년에 건 립하여 현재까지 수행자들의 정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외 나한전 옆에 명부전이 있 었다고 하는데 대구 서봉사로 이전되고, 남은 건물은 해체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절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일명 질구내라고 하는데 약수로 유명하여 예부터 나병 환자, 피 부병 환자들이 이 물로 여러 번 씻으면 낫는 영험을 보여 왔고, 용흥사 도량에서 기도 드린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가피를 입고 소원 성취하여왔다.

 

용흥사는 비록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영험이 많은 기도 도량으로 사바세계에서 괴로워하고 번민하는 수많은 중생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고 시원한 청량수가 되고 있다.

 

영덕불교사암연합회 집행부 스님들과 함께 용흥사에 도착하였다. 용흥사는 신라 진감선사가 창건하고 나옹왕사께서 중창한 사찰이다. 용흥사를 먼 발치에서 보니 연악산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기 전에 연악산 용흥사 사적비명이 큰 돌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서 몇 계단을 오르니 바로 사찰 경내가 보였다. 5층 석탑이 정면에 보이고 그 뒤로 극락보전이 위치하고있다. 극락보전의 오른쪽에는 백운선원이, 왼쪽에는 요사채가 있 다. 극락보전 좌측 뒤쪽에는 나한전과 삼성각이 위치해있다. 전체적으로 도량이 편안하게 보이며 문턱이 크게 없어 누구라도 쉽게 참배할 수 있는 도량이라는 느낌이 든다.

 

먼저 극락보전 부처님 전에 참배를 하였다. 주불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로서 관음세지 양대 보살께서 좌정하고 계셨다. 나한전에서 석가모니불과 30나한상을 친견하였다. 나한한 분께서

쥐를 잡고 계시는 모습이 특이했는데 나한님 치아가 꼭 쥐 이빨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 전각과 도량을 살펴보았지만 현재 나옹왕사와 관련된 유물과 진영은 보이지 않았다. 도량을 나오기 전에 극락보전 앞에서 게송을 송()하고 다같이 하산하다.

 

참방 떠나는 징선자(澄禪者)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낳아준 참 면목을 찾기 위하여

주장자를 세워 들고 앞길로 나아가네

단박에 진짜 사자를 후려치는 날에는

갑자기 몸을 뒤쳐 한 소리 터뜨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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