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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 해인사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 “달마와 혜가 혜가 단비도”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벽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달마대사가 남천축(南天竺)으로부터 배를 띄워 바다를 항해한 지 3년, 양무제는 황제의 권위로 그를 황제궁으로 불러들여 융숭히 대접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공이 크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양무제가
“짐이 즉위한 이래 절을 짓고 경을 베껴 쓰고 스님에게 계(戒)를 준 것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인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달마 대사는 “이것은 다만 인천(人天)의 소과(小果)라서 유루(有漏)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있다 해도 실답지는 않습니다.”라 답하였습니다.
양무제가 다시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眞孔德]입니까?”말하자, 달마대사는 “청정한 지혜는 오묘하고 완전해서 그 체(體)가 저절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법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라 답하였습니다.
양무제는 실망한 나머지 달마스님을 땡중으로 인식하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달마는 양나라를 떠나 북위 숭산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토굴속에 터를 잡고 9년동안 처절한 면벽수행을 하며 제자 다운 제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달마 대사가 머문 지 9년 그때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그의 법을 전수받는 제자가 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사는 항상 단정하게 앉아서 면벽한 채 듣지도 않고 가르쳐 주지도 않자 신광(神光)은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도를 구하기 위해서 뼈를 두들기고 골수를 빼냈으며 피를 흘리고 배고픔을 견디었고 또한 머리카락을 펴서 진흙을 덮었으며,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 밥이 되기도 하였다. 옛날에 뛰어났던 사람도 이와 같이 하였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습니다. 신광은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새벽에 다다르자 눈이 무릎 위까지 쌓여 있자 달마 대사가 민망하게 여겨서 질문하였습니다.
“그대는 오랫동안 눈 속에 서 있으면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신광이 비탄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화상(和尙)께서 자비(慈悲)로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서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달마는 “모든 부처님의 위 없고 오묘한 도는 광겁(曠劫) 동안 정근(精勤)해야 하고, 난행(難行)을 능히 행해야 하며, 참지 못할 것을 참아야 하는데, 어찌 소소한 덕과 소소한 지혜, 경솔한 마음과 태만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고자 하는가? 부질없는 수고로움으로 쓸데없이 고초만 겪으리라.”라고 답하였습니다.
벽화는 이후의 내용이 그려졌습니다.
신광이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듣고서 몰래 날카로운 칼을 잡고 스스로 왼팔을 끊어 달마대사 앞에 내밀었습니다. 달마 대사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처음에 도를 구할 때 법을 위해서 몸을 잊었는데, 그대가 지금 팔을 끊어서 내 앞에 내미니, 그대 또한 구할 수 있겠도다.”
그리고 드디어 이름을 혜가(慧可)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신광이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묻자
달마 대사가 말하길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라 답하자.
신광이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말하자
달마 대사가 말하였습니다.“마음을 가져 오면 그대를 편안하게 해주겠다.”
신광이 말하길“마음을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겠습니다.”
달마 대사가 말하였습니다.“내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노라.”
혜가는 바로 여기에서 깨달아 들어가 2조(祖)가 되었습니다.
오늘 준비한 사찰벽화는 해인사 대적광전에 그려진 “달마와 혜가 혜가 단비도” 이야기와 관련된 벽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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