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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터
「영덕군향토사」에는 “대진 3리 마을 뒷산 계곡에 옛 절터가 있어 중절터라고 전하여 오고 있으며 지금도 절터가 남아 있다. 용묘마을 북쪽 바닷가 300m 떨어 진 곳에 기암절벽이 위치한 산형곡이 마치 용이 날아 가는 둣하여 여말 고승인 나옹 대사께서 김영김씨 5대조비묘를 쓰게 하였다. 이후 기암절벽을 용암 또는 용묘라고 전하여 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답사기록
중절터에 위치한 상대산은 높이 183m의 영덕군 영해면의 대표적인 산이다. 서쪽으로는 등운산(786m)과 칠보산(810m)을 바라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가 펼쳐지는 명승지다.
북쪽으로는 울진군 후포면이, 남쪽에는 포항시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대산 서쪽 절벽 위 정상을 관어대라 부른다. 고려 말의 학자이자 문신인 목은 이색(1328~1396)이 '상대산 너머 바닷가의 고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상대산 정상에서 서쪽과 북쪽을 보면 고래불의 아름다운 해변과 병곡의 드넓은 곡창지대가 시야를 가 득 채운다. 옛 문헌에서는 관어대를 상대산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 등 여러 지도에서도 일관되게 이 산의 지명을 관어대라 부르고 있다.
대진 3리 중절터를 가기 위해 대진 3리 마을회관의 어른들을 찾아 뵙고 중절터를 안내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렸다. 그런데 중절터로 가는 길이 경사가 많이 지고 또한 지금은 그 길을 이용하지 않는 관계로 중절터를 아는 연세 많은 분들이 있었지만 체력이 모자라 모두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배상걸 이장님께서 영해 화신약방의 대표인 김하식(77세) 선생의 조부 산소가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안다고 하였다. 어렵게 부탁하여 김하식 거사님과 아드님이 동행하여 함께 중절터를 향하였다.
대진 3리로 가지 않고 영덕군에서 만들어 놓은 불루로드 길을 향하였다. 관어대 쪽에서 목은 이색 기념관으로 향하다가 2.3킬로미터 지점에서 전망대 못 미쳐 오른쪽 길 밑에 중절터가 있었다. 김하식 거사님 조부님이 중절터에서 100일 기도드린 곳이 중절터인것과 김녕김씨 5대조부비의 산소를 나옹 선사께서 쓰게 하였다는「영덕군향토사」의 기록과 일치하여 그곳이 중절터임을 알 수 있었다.
김하식 거사님의 말씀으로는 절터 밑 계곡에 물이 흘러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절터 우측 봉우리가 망월봉이며 저 멀리 봉화산이 보이며 절터 축대가 남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볼 때, 풍광이 절터로서는 괜찮은 것 같았다.
늦게 알았던 내용이지만 중절터 위쪽 전망대가 바로 관어대 정상임을 알게 되었다. 중절터가 앉은 자리가 명당 자리임을 그제사 알게 되었다. 아쉬운 것은 당시 절터였다면 기와 조각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나무와 낙엽들로 인하여 기와나 기타 당시 사용하였던 축대 이외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차후 발굴조사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하산하였다.
안로생(安魯生)의 사(詞) “관어대에는 석벽(石壁) 천 층 밑에, 바다는 몇 길인가. 큰 물결 일만 리라도 한 천지(天地)이라, 굽어 보며 노는 물고기 세어 보누나. 물이 줄어드니 낚시터의 바위가 드러나고, 돛을 여니 간밤 비 드물다. 만약 여상(呂尙)으로 하여금 여기와 살게 하였다면, 서백(西伯)도 같은 수레에 타고 갔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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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폐사지 불적답사란?
영덕불교사암연합회 회장 현담스님의 도움으로 영덕 불교 폐사지를 시작하여 전국의 폐사지를 알려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의 규명도 없이 훼손, 멸실 되는 등 보호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폐사지의 현실을 알려 불자 모두가 폐사지 보호에 앞장서고 보전하는 일에 적극으로 동참하고 나섰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영덕불교 영덕사찰 체로금품” 내용 중 4부 “영덕 폐사지 불적 답사” 머리 중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현재의 모습을 후대인들에게 전하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모습을 통하여 현재를 조명하고 후대인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어야 한다.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현존하는 사찰 외에도 적지 않은 사찰들이 중간에 폐사(廢寺)를 맞게 되었다. 폐사의 역사 또한 과거 자산으로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잔해마저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통일신라 이후 창건되어 유지 폐사된 모든 불교 사찰의 현황을 파악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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