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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사지(慶壽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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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19.12.23 10: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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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사지[慶壽寺址] 

「영덕군지」의 내용을 보면 “경수사는 일명 정수사(淨水寺)라고 하며, 영덕군 남정면 중화리 절골이라는 곳에 있었다. 통일신라 말엽인 경순왕 10년(927)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입증할 자료는 없다. 1998년 12월 31일 현재 사찰은 폐사되고 유지(遺址)만 남아 있으며, 유지에는 기와 조각과 사찰의 축대, 그리고 주춧돌의 일부가 남아 있다.

 

폐찰연대는 조선조 후기라고 추정된다. 1723년 이후 에 간행된 「야성읍지」에 ‘정수사는 현의 남쪽 30리의 남역동에 있다.’는 것과 1800년대 후반에 나온 「경상북도영덕군읍지」에 '정수사는 남역 북쪽 기슭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찰되었다.’라는 것으로 보아 이를 알 수 있으며, 1628년에 창건된 신안서원에 매년 백지 3속(束)과 훈장 별혜(別鞋) 1부(部), 서적과 기물을 상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안서원이 대원군에 의하여 훼손될 때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하는 말로는 정수사가 300여 명의 수행승을 거둘 정도의 대찰이었는데, 스님들의 조석공양을 위한 쌀을 씻는 뜨물이 절 밑의 남역(남정리)에까지 흘러내려 이 물을 먹은 역마들이 모두 죽게 되자 남역의 역졸들이 이 절을 불태워 파괴 하였다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주춧돌과 부서진 기왓장, 탑 자리가 남아 있음. 절골 경수사터 부근 한곡에 길이 2m, 폭 1.5m나 되는 돌을 다듬어 놓은 돌다리가 남아 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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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록

남정면 중화리 절골에 위치한 경수사지, 일명 정수사는 사지에 다녀갈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번 영덕군 사찰 현황 파악과 폐사지를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고서야 갈 수 있었다. 절에서 점심을 일찍 먹고 남정면으로 출발하였다. 출발에 앞서 남정면이 고향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조사위원이며 영덕군 전 군의회 의원인 이완섭 의원에게 간략하게 사지에 관한 내용과 중화 지장암 전 주지 스님인 성범 스님을 통하여 사전 지식을 얻었다.

 

남정면 중화길 넓은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길 안내해 줄 사람을 물색하였다. 20여 호가 될 것 같은 동네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한 집을 방문하여 여쭈어 보았다. 이 동네에 시집와서 현재까지 사는 이금자(77세) 보살님을 만날 수 있었다. 보살님의 말씀에 의하면 동네에서 1㎞ 정도 가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저수지 왼쪽으로 돌아 계속 가면 동네 상수도가 있으며, 그곳에서 300m 지나면 절터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절터 땅이 현재 큰집 소유이며 절 주위에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였다. 동네에 주민들도 많이 없고, 연세가 많은 관계로 이야기하는 말씀만 듣고 출발하였다.

 

말씀하신 대로 1㎞ 정도 가니 저수지가 나왔다. 오른쪽에 포장도로가 있어 그쪽으로 5분 정도 올 라가니 길이 끊겨 있어, 산으로 계속 가면 되리라 생각하여 없는 길을 만들어서 진입하였으나, 저수지 3분의 1도 가지 못하였다.

 

다시 지장암 전 주지 스님인 성범 스님에게 전화하여 물었으나 감을 잡지 못하고 다시 저수지 쪽으로 내려와서 보니 저수지 왼쪽에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저수지 끝을 지나 왼쪽 오동나무가 많은 골을 접어들어 계속 절터로 향하였다. 가다가 모과나무에서 모과를 등산 걸망에 반 가방 정도 집어넣고 감나무에 달린 겨울 홍시를 맛보면서 2시간을 걸어 계곡 끝까지 갔지만, 절터는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전화도 불통이고 계곡 끝에서 멧돼지를 만나 혼쭐이 나고 나무아미타불 천타불 만타불하면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계곡 끝까지 갔던 것은 이금자 보살님께서 절터에 큰 오동나무가 있다는 말씀만 기억하여 계곡을 향해 가면 갈수록 큰 오동나무들이 나와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무도 밟지 않은 곳에 맑은 공기와 겨울 홍시를 감나무 밑에서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다시 왔던 길을 나와 이완섭 전 의원에게 전화하여 절터로 향할 수 있었다. 가르쳐준 대로 동네 상수도를 지나 몇백 년 묵은 느티나무를 지나 계곡에 방치된 돌다리를 보면서 경수사지 절터에 도착하였다. 험난한 길을 돌아온 기념으로 혼자서 반야심경 한 편 독송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절 주위가 축대로 되어 있고 축대 속에 기와 조각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전에도 전답으로 사용했던 것 같고 지금은 경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축대가 옛날 절에서 사용한 축대가 아니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 쌓은 것으로 보였다. 주위를 살펴보건대, 기와 조각과 절에서 사용한 맷돌도 아니고 받침대 비슷한 돌도 축대 한쪽에 있었다. 탑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하였는데 잡목과 가시넝쿨로 인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대충 보건대, 계곡 전체가 절터로서 옛날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절터 위쪽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계곡 안쪽에는 사람들이 전혀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하며 숲이 우거져 금방이라도 멧돼지가 다시 나타날 것 같아 절터 자리를 제대로 찾은 기쁜 마음으로 기와 조각을 걸망에 넣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은 걸망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볍게 내려올 수가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2005년에 열반하신 인곡 법장 큰스님의 열반송을 되새기다.

아유일발낭(我有一鉢囊)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 

무구역무저(無口亦無底) 입도 없고 밑도 없구나 

수수이불람(受受而不濫)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출출이불공(出出而不空)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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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폐사지 불적답사란?

영덕불교사암연합회 회장 현담스님의 도움으로 영덕 불교 폐사지를 시작하여 전국의 폐사지를 알려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의 규명도 없이 훼손, 멸실 되는 등 보호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폐사지의 현실을 알려 불자 모두가 폐사지 보호에 앞장서고 보전하는 일에 적극으로 동참하고 나섰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영덕불교 영덕사찰 체로금품” 내용 중 4부 “영덕 폐사지 불적 답사” 머리 중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현재의 모습을 후대인들에게 전하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모습을 통하여 현재를 조명하고 후대인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어야 한다.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현존하는 사찰 외에도 적지 않은 사찰들이 중간에 폐사(廢寺)를 맞게 되었다. 폐사의 역사 또한 과거 자산으로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잔해마저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통일신라 이후 창건되어 유지 폐사된 모든 불교 사찰의 현황을 파악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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