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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고려말 태고보우국사가 지은 '태고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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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20.03.04 09:0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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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고려말 태고보우국사가 지은 '태고사'를 가다



태고사 입구
▲ 태고사 입구


태고사 대웅전과 태고보우국사 비각
▲ 태고사 대웅전과 태고보우국사 비각


보우국사 비가 있는 비각
▲ 보우국사 비가 있는 비각


태고 보우국사 탑비
▲ 태고 보우국사 탑비


막돌로 지어진 태고사 산신각
▲ 막돌로 지어진 태고사 산신각


태고사 내 북한산 산신령
▲ 태고사 내 북한산 산신령


대고사 안에 있는 태고보우국사와 근세 태고종의 킅스님인  대륜스님 승탑
▲ 대고사 안에 있는 태고보우국사와 근세 태고종의 킅스님인 대륜스님 승탑


고려말 태고 보우국사 승탑
▲ 고려말 태고 보우국사 승탑


태고종의 큰스님 이었던 대륜스님 승탑

▲ 태고종의 큰스님 이었던 대륜스님 승탑



[글] 북한산 서북쪽에는 북한산성이 있다. 조선조 숙종때는 대대적으로 산성을 축조하고 그 안에는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도 지었다. 이 일을 주관한 사람은 당시 건축과 토목공사에 특출한 능력이 있었던 성능스님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스님들이 있어서 가능하였다.


 북한산성 안에는 고려말 고승으로 국사의 지위에 오른 태고보우국사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남아있는 태고사가 있다. 태고사는 고려말 태고보우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지금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 규모도 매우 컸다. 숙종 때, 성능스님이 중창했을 때만 해도 태고사에는 131칸의 절건물이 있었고, 경전을 새긴 목판이 5,700여 매가 있었으며, 불교경전을 찍어내기 위한 금속활자 11말과 전쟁에 대비한 화약이 1,600여 석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대표종단으로 조계종과 태고종이 있는데, 태고는 바로 태고보우스님의 법맥을 잇겠다는 뜻에서 종단의 이름으로 채택된 이름이다. 그만큼 고려말 크게 활약한 스님이 태고보우국사였다. 지금 태고사 안에는 태고보우국사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가 있는데, 사리탑은 '원종국사탑'이라 이름하여 보물 제749호로 지정되었고,  탑비는 '원종국사탑비'라 하여 보물 제 611호로 지정되었다.


태고보우국사 행적


속성은 혼(洪)으로 홍주(洪州)인이다. 13세(1313년)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하였고, 가지산 하종림에서 도를 딲아 26세(1326년) 승과고시인 화엄선에 합걱하였다. 이후 용문산 상원암, 성서 감로사에서 고행하며 정진하였으며, 1337년 충숙왕때 송도 전단원에서 참선정진하다 1338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이후 북한산 중흥사 동쪽 현재 태고사에 태고암을 짓고 1346년충목왕 2년 몽골에 들어가 석옥청공의 법맥 이어 고려(동국)에 임제종의 초조가 되었다. 1347년 고려오 돌아와 용문산 소설암에 거처를 정하고 있었는데, 공민왕이 법을 청하여 보우를 왕사로 삼아 광명사에 원융부를 두고 전국의 9산선문을 하나로 통합하게 하였다. 이후 다시 소설암으로 옮겨 살았는데, 신돈(辛旽)과 다툼중에 속리산에 금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신돈이 실각한 뒤 다시 국사가 되어 우왕 8년 12월 24일 소설암에서 입적하였다. 1382년 세속나이로 82세 법납 69세였다. 우왕은 태고보우를 원증(圓證)오로 시호를 내리고 탑의 이름은 보월승공(寶月昇空)이다.


태고보우국사는 고려말 불교의 폐단으로 유교의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고려사회에 배불의 기운이 싹트게 되고,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행불교 깨달음을 구하는 선불교에서 복을 비는 기복불교로 왜곡되어가자 그 폐단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보우(태고)와 보제존자 혜근(나옹)은 당시 중국의 선종의 주류였던 임제종을 도입하여 선불교의 법맥을 고려에 도입하였다. 특히 보우는 구산선문으로 분열되었던 선종을 통합하고자 하였으며, 그 과업을 조선에 넘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조가 성리학만을 추종하며 불교를 탄압하게 되자 불교의 세력은 매우 쇠퇴하고 선종 교종 할 것없이 근근히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고려시대까지 개경을 중심으로한 지방의 도읍지 인근에 큰 절들은 대부분 폐허가 되고, 불교는 산중으로 들어가 은둔의 종교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지금의 큰 절들이 산속에만 있는 연유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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