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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목포 달성사는 목포항과 일제강점기 번성하던 옛시가지 옆에 있는 목포 유일의 산인 유달산의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목포는 개항과 더불어 서양문물이 들어옴과 동시에 서양의 종교가 많이 전파되어서인지 불교신자들이 많지 않다. 또 목포는 개항과 함께 발달한 도시인 때문에 옛 고찰도 없었다.
이런 목포에 달성사는 격동의 구한말이 지나고 일제강점기 초창기인 1913년 해남의 대흥사에 있던 노대련 스님이 불심있는 목포지역의 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창건한 사찰이다. 유달산은 비록 산이 높거나, 골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문을 연 항구에 인접한 산으로, 가파른 남쪽의 중턱에 그나마 어렵게 터를 다듬어 자리하였기에, 평지의 사찰과 같이 넓은 경내를 갖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험한 바위산의 산세를 잘 살핀 뒤 그중에서 적당한 터를 택하여, 바위를 깨내고, 골은 메꾸어 터를 잡고, 이도 모자라 주변의 돌들을 모아 축대를 쌓아 집터와 마당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만든 절이라, 지금처럼 유달산을 돌수 있는 찻길이 새롭게 만들어진 오늘에도, 찻길에서 절마당까지는 108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야만 오를 수 있다.
유달산은 전체가 바위산이지만 높은 산도 아니어서, 빗물이 고일만한 곳이 아니다. 따라서 항상 물이 부족한 곳이라, 절을 짓고 사람이 살기 위하여는 생명의 원천인 우물을 찾기 위하여 고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처음 달성사를 창건한 노대련 스님은 물 때문에 고생이 많아 창건한지 10년만에 샘물이 나오길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드리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한 마음만 가지고 극락보전의 옆에 샘물을 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돌바닥에서 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지만, 오로지 부처님만 의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바위를 파고 내려가 30자(약 10m)쯤에 이르러서야 기적처럼 바위 밑에서 샘물이 솟구쳐 올랐다. 이렇게 어렵게 바위를 뚫고 솟아난 감로수(샘물)는 목포지역의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고, 많이 마셔도 탈이 없는 감로수로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달성사에는 강진 백련사에서 모셔온 목조 아미타불을 극락보전에 모셨는데, 현재 이 부처님은 전남 유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되었으며, 명부전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10대왕은 1719년 조성된 귀한 불상군(모두 합하여 25구)으로 한국의 보물 제 201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목포지역에도 여러 사찰들이 있지만,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고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찾은 유달산 달성사는 결코 큰 사찰은 아니었지만, 전각들이 하나같이 한국전통건축의 법식에 맞게 지어져 있고, 건물마다 단청 또한 아름답게 잘 칠해진 절이었다. 일제강점기 그 어려운 시절에도 유달산 바위를 깎아내고 또 돌을 모아 계단을 쌓고 축대를 쌓아만든 달성사를 둘러보고 오늘의 달성사가 있기까지 피땀 흘려 수고하신 분들께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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