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B한국불교방송

KBB한국불교방송

HOME > 매거진 > 화보/출사

[화보] 홍천 물걸리 옛 절터를 찾아서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21.03.16 09:00
조회수
4,923
  • URL 복사

c38066f394cc3519156e10bc67b6dfbe_1615768988_551.jpg
 

물걸리 절터 전경
▲ 물걸리 절터 전경

 

석탑과 발굴된 불상들을 안치한 보호각
▲ 석탑과 발굴된 불상들을 안치한 보호각

 

밭에서 나온 긴 기단석들과 삼층석탑 , 석탑의 뒷편으로는 발굴전부터 살던 주민의 집이 있다.
▲ 밭에서 나온 긴 기단석들과 삼층석탑 , 석탑의 뒷편으로는 발굴전부터 살던 주민의 집이 있다.

 

삼층석탑(보물 제545호)과 안내판
▲ 삼층석탑(보물 제545호)과 안내판

 

삼층석탑, 상륜부만 멸실되었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적 모습 그대로다. 탑의 아래에는 기단이 2단으로 놓여있고, 그 위에 3층 탑이 올라가 있으며, 탑신의 상부에는 상륜부가 없다. 1층 탑신에는 건물의 기둥을 나타내는 기둥모습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은 없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임을 알 수있다.
▲ 삼층석탑, 상륜부만 멸실되었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전형적 모습 그대로다. 탑의 아래에는 기단이 2단으로 놓여있고, 그 위에 3층 탑이 올라가 있으며, 탑신의 상부에는 상륜부가 없다. 1층 탑신에는 건물의 기둥을 나타내는 기둥모습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다른 조각은 없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임을 알 수있다.

 

절터에서 나온 기단석들, 기단돌들도 보이는 면은 모두 다듬기를 하였다. 이는 자연석을 그대로 놓는 것 보다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뜻한다.
▲ 절터에서 나온 기단석들, 기단돌들도 보이는 면은 모두 다듬기를 하였다. 이는 자연석을 그대로 놓는 것 보다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뜻한다.

 

보호각 내 안치된 불상과 좌대, 적어도 4구 이상의 불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에서 왼쪽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오른쪽 부처님은 비로자나불
▲ 보호각 내 안치된 불상과 좌대, 적어도 4구 이상의 불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에서 왼쪽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오른쪽 부처님은 비로자나불

 

불상을 안치했던 좌대와 부처님 뒷편 광배, 광배에는 세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좌대의 하대부터 모든 돌에 조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보물 제544호, 대좌와 광배까지 있지만 부처님 모습은 사라졌다. 부처상은 돌이 아닌 목조나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이 아니었나 싶다.
▲ 불상을 안치했던 좌대와 부처님 뒷편 광배, 광배에는 세밀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좌대의 하대부터 모든 돌에 조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보물 제544호, 대좌와 광배까지 있지만 부처님 모습은 사라졌다. 부처상은 돌이 아닌 목조나 흙으로 조성한 부처님이 아니었나 싶다.

 

좌대 중대석에 새겨진 조각상
▲ 좌대 중대석에 새겨진 조각상

 

광배와 좌대
▲ 광배와 좌대

 

석가모니불상 보물 제541호기단부터 불상까지 거의 완벽한 모습인데, 부처님의 상호(얼굴)가 약간 깨어져 있어서 아쉽기 그지 없다.
▲ 석가모니불상 보물 제541호기단부터 불상까지 거의 완벽한 모습인데, 부처님의 상호(얼굴)가 약간 깨어져 있어서 아쉽기 그지 없다.

 

좌대 중간의 조각, 8면에 모두 천인상을 새겼다. 또 좌대의 위 아래에도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넣어 매우 큰 정성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 좌대 중간의 조각, 8면에 모두 천인상을 새겼다. 또 좌대의 위 아래에도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넣어 매우 큰 정성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좌대의 조각
▲ 좌대의 조각

 

좌대 하단의 조각상, 날개달린 사람모습의 천인상
▲ 좌대 하단의 조각상, 날개달린 사람모습의 천인상

 

부처님 옆모습들
▲ 부처님 옆모습들

 

비로자나부처님좌상 정면 보물 제542호. 불상의 옷주름은 양 어깨를 다 감싸고 있는 통견 모습으로 옛 신라시대의 부처님 모습이다.
▲ 비로자나부처님좌상 정면 보물 제542호. 불상의 옷주름은 양 어깨를 다 감싸고 있는 통견 모습으로 옛 신라시대의 부처님 모습이다.

 

비로자나부처님좌상 보물 제542호
▲ 비로자나부처님좌상 보물 제542호
비로자나불의 수인,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
▲ 비로자나불의 수인,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

 

대좌의 중대석 조각
▲ 대좌의 중대석 조각

 

석불 대좌와 광배 보물 제543호.대좌 위에 부처님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
▲ 석불 대좌와 광배 보물 제543호.대좌 위에 부처님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

 

돌부처님 뒷편에 세워져 있던 광배의 일부
▲ 돌부처님 뒷편에 세워져 있던 광배의 일부

 

평생을 물걸리 옛절터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전덕재 씨는 현재 물걸리 절터 보호각이 들어선 자리의 밭 소유자였다. 그의 증언으로는 보호각이 들어서기 전에는 불상이 나뒹굴었다고 했다.지금도 밭갈이에 소를 이용한다는 전덕재 씨의 재산 목록 1호 소들을 자랑스런 듯 바라보고 있다.
▲ 평생을 물걸리 옛절터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전덕재 씨는 현재 물걸리 절터 보호각이 들어선 자리의 밭 소유자였다. 그의 증언으로는 보호각이 들어서기 전에는 불상이 나뒹굴었다고 했다.지금도 밭갈이에 소를 이용한다는 전덕재 씨의 재산 목록 1호 소들을 자랑스런 듯 바라보고 있다.

 

물걸리 옛절터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전덕재 씨의 든든한 소, 가운데는 최근에 태어난 새끼 송아지로 신축년 소띠해의 귀염둥이다.
▲ 물걸리 옛절터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전덕재 씨의 든든한 소, 가운데는 최근에 태어난 새끼 송아지로 신축년 소띠해의 귀염둥이다.

 

물걸리 옛절터 자리는 전덕재 씨의 밭이었으며 불상을 위한 보호각이 들어서면서 밭의 일부가 수용되었다고 했다. 바로 집 앞이 물걸리 절터로 기자가 찾은 이날 물걸리 옛절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물걸리 옛절터 자리는 전덕재 씨의 밭이었으며 불상을 위한 보호각이 들어서면서 밭의 일부가 수용되었다고 했다. 바로 집 앞이 물걸리 절터로 기자가 찾은 이날 물걸리 옛절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는 아주 깊은 산골이다. 주변 산세가 높은 악산은 없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볼 때 승용차로 가기에도 먼 거리다. 물걸리(物傑里)는 만물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의 각종 생산물이 모여들어 동창(東倉)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동창(東倉) 곧 동쪽 창고에 그득하던 물산이 있던 동네라서 그런지 지금도 동네가 제법 크다. 

 

이곳에서 태어나 밭농사를 지으면서 살던 농민 전덕재 (81세) 씨는 젊은 시절인 1967년 밭갈이를 하던 중 쟁기에 걸려나온 금동여래입상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를 정직하게 문화재당국에 신고하였다.  이후 이곳은 강원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물걸리옛절 보호구역 내에 석탑과 석불 및 광배 등 5점의 보물(1971.7.7.지정)로 지정되었다.  이를 살펴보면 보물 제541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42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43호 불대좌(불상을 안치하는 좌대) 보물 제544호 불대좌 및 광배(부처님 좌대와 부처님 뒤에 세워진 보호 석판), 보물 제545호 삼층석탑 등이다.

 

이 밖에도 금동불상 여러 구가 발굴되었는데, 금동불상들은 국립춘천박물관으로 옮겨져 보호받고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지붕에 얹혀있던 기와조각들과 고려시대 사용했던 청자조각, 조선시대 사용했던 백자조각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까지는 절의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발굴되어 보호각에 안치한 석불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매우 공들인 불상과 좌대, 광배 등으로 보아 이곳이 영서와 영동지역의 중요한 창고인 동창(東倉)이 존재했을 만큼 꽤 사람의 왕래가 잦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절이름도 알 수 없이 '물걸리 절터(物傑里寺址)'로만 전하는 것이 아쉽다.

 

깊은 산골짜기 이러한 큰 절을 짓고 수도했던 스님은 어떤 큰 스님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이만큼의 불사를 이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재물이 들어갔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동안 쌓았던 공덕의 허물어짐이 야속해 보인다. 그 공덕의 산물들이 허물어지고 땅속에 묻히고 그 자취조차 없어지고 밭이 되기까지, 세월은 무심히 흘렀다. 한 때 찬란했던 물걸리절의 흥망성쇠의 유래가 그 언제인가 확인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 URL 복사

KBB한국불교방송 방송/신문/매거진 무단 저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업적 목적의 사용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 출처 'KBB한국불교방송'을 반드시 표시하셔야 합니다.

KBB한국불교방송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제보 053-1670-2012

많이 본 매거진

인기 영상

많이 본 신문

KBB 전체 인기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