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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사 삼사순례에 나옹왕사의 법향(法香)을 전하고 표충사에서 사명대사의 충절(忠節)에 예경(禮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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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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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太空間無盡藏 

일태공간무진장 

우주의 공간 다함이 없고

寂知無臭又無聲 

적지무취우무성 

적멸은 냄새도 없으며 또한 소리도 없도다.

只今廳說何煩問 

지금청설하번문 

다만 지금 말을 

듣고 어찌 번거롭게 묻는가

雲在靑天水在甁 

운재청천수재병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속에 있도다.


위의 게송은 사명대사(1544∼1610) 유정(惟政)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다. 대사께서는 임진왜란에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급한 때 나라를 구한 구국승(救國僧)으로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559년 김천 직지사로 출가한 뒤 2년 만에 승과(僧科)에 합격하고 1575년 봉은사(奉恩寺) 주지로 천거 되었으나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고 서산대사인 휴정(休靜)의 제자가 되었다. 대사는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성 건봉사(乾鳳寺)에서 승병을 규합하여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대사는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訃音)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아 전란 때 잡혀간 3,000 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해 6월 국에게 복명(復命)하고 10월 묘향산에 들어가 비로소 휴정의 영탑(影塔)에 절하고 통곡하였다. 1610년 8월 26일 본인이 세연(世緣)이 다함을 알고 마지막 설법을 제자들에게 하였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진 이 몸은 진여(眞如)의 세계로 돌아가련다.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오가며 환상의 몸을 괴롭히랴... 나는 적멸(寂滅)의 세계로 들어가 대화(大化)에 순응하리라.”라고 하였다. 시호(諡號)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 행장(行狀)은 영남의 표충사비(表忠祠碑)에 갖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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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을 앞두고 지난 3월4일 토요일 서남사에서는 삼사순례 및 방생법회를 봉행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3여 년 동안 삼사순례를 봉행하지 못한 관계로 금 번 삼사순례는 많은 분들이 수희(隨喜)동참하고자 하여 이른 시간에 인원을 맞추었다. 먼저 밀양 금시당유원지에서 방생법회를 봉행하고 이어서 밀양 삼량진읍 단장로에 위치한 구천산 삼봉사에서 대웅전 부처님을 친견,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오층육각사자보탑에서 함께한 불자 모두가 우요삼잡(右繞三匝)의 예를 갖추고 첫 성지순례지에서 신심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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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순례 첫 순례에 일심정례하고 예약한 점심공양 후 두 번 순례지 만어사(萬魚寺)부처님을 참배하였다. 만어사는 삼국시대 금관가야 제1대 수로왕이 창건한 사찰로서 『삼국유사』 「탑상(塔像)」편 어산불영(魚山佛影)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만어산은 옛날의 자성산(慈聖山)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인데, 그 옆에 가락국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곧 수로왕이다. 이때 그 영토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그 못 안에 독룡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에 다섯 나찰녀(羅刹女)가 있어 그 독룡과 소로 오가며 사귀었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레와 비를 내려 4년 동안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왕은 주술로써 이 일을 금하려 해도 할 수 없으므로 머리를 숙이고 부처를 청하여 설법했더니 그제야 나찰녀(羅刹女)가 오계(五戒)를 받았는데, 그 후로는 재해가 없었다. 그 때문에 동해의 고기와 용이 마침내 골짜기에 가득 찬 돌로 변하여 각기 쇠북과 경쇠소리가 난다. 이 때 1180년 명종10년 만어사를 세웠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함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에 있는 스님을 찾아 자신의 살곳을 부탁한 봐 가다가 멈추는 곳이 그 곳이라하여 가다가 멈춘 곳이 만어사라 하였다.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미륵돌로 변하고 수많은 고기는 크고 작은 돌로 변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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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성지순례 두 번째 사찰인 만어사에 부처님을 참배하고 용왕의 아들이 미륵돌로 변한 미륵전을 참배하고 수많은 물고기가 변한 크고 작은 바위돌을 둘러보고 함께한 불자들은 자신의 근기에 맞게 도량을 둘러보았다.  도량을 참배 후 버스 안에서 불자들에게 당대의 승려 조주(趙州)의 일화에서 유래한 화두를 들려 드렸다. 『벽암록』제45칙에 나오는 내용으로 한 승려가 조주에게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 가다고 하는데, 그럼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하고 물었다. 이에 조주는 ‘내가 칭저우[靑州]에 있을 때 삼베 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대답한 내용을 들려드렸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따질 일이 아니라, 그 자체의 모습(如實)으로 받아들여야 것이다. 


두 번째 성지순례 사찰 만어사는 불자 분께서 말씀하시길 근간에 TV에 방송을 타서 그런지 참배객인지? 관광객인지? 알 수 없는 차들이 계속 이어져 와서 대형버스가 사찰경내까지 가기가 쉽지 않은데도 불구 기사 분께서 운전을 능숙하게 하여 무사히 참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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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지막 성지순례 사찰인 재약산 표충사 부처님을 참배하였다.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스님께서 터를 잡아 창건한 죽림정사(竹林精寺)를 신라 흥덕왕 4년 때 인도스님인 황면(黃面)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재건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영정사(靈井寺)라 개칭하였다. 영정사(靈井寺)라고 사명을 쓴 것은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癩病)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治癒)의 공덕으로 개사(改寺)하였다.  1839년(헌종5)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서산, 사명, 기허대사를 모신 표충사당(表忠祠堂)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가 되었다. 


원래의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白霞庵)자리에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祠院)의 격(格)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영정사)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로는 국보 제75호 청동함 은향완과 보물제 467호 표충사 삼층석탑이 있으며, 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사 석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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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을 참배 예경(禮敬)하였다.  넓을 도량과 많은 전각들로 함께 한 불자들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일주문을 시작으로 본당인 대광전(大光殿)을 일심(一心)으로 각자가 가까이는 세간의 복락(福樂)과 구경(究竟)에는 성불(成佛)의 인연을 염염상속(念念常續)을 발원하였다. 소승은 부처님을 참배하고 주지스님과 차담(茶談)의 시간을 가졌다. 표충사 진각주지스님께서는 코로나19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을 한마음으로 발원하며 2019년 위례신도시에 상월선원(霜月禪院)의 90일 간의 천막결사에 동참하신 9분의 스님 중 한 분으로서 입승의 소임을 보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의 경구(經句)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했는데 물 한 방울이라도 소화시키기 어렵지 않은가(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조사관문 통과하지 못했는데 어찌 편안히 잠들겠는가(若未透祖關 如何安睡眠).’라는 게송(偈頌)을 새기며 대각(大覺)을 위해 돈오일문(頓悟一門)의 향상일로(向上一路) 정진(精進)회향하였다고 한다. 주지스님의 크신 원력행(願力行)에 부합(符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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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하여 3여 년 동안 매년 두 차례 봉행해오던 성지순례법회를 무사히 회향하였다. 나옹왕사의 법향이 가득한 영덕에서 출발하여 사명대사의 충절이 가득한 표충사를 참배하고 회향하였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법맥의 주류는 나옹스님과 그의 제자인 무학대사, 그리고 무학대사의 제자인 함허득통으로 이어서 조선 중기와 후기에 들어서는 서산 휴정과 사명유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법맥도 나옹왕사께서 출가 서원과 같이 초출삼계(超出三界) 이익중생(利益衆生)의 원력행이다. 사명대사 유정스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자력(自力)은 일념회기(一念回機)로서 본각(本覺)과 동일해지는 것이요, 자부(慈父)에 귀의하여 십념(十念)의 공(功)을 이루는 것이다. 즉 어리석은 사람도 한 생각 돌이킨다면(一念回機)단박에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됨으로서 범부와 성인의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라고 하였다. 삼사성지순례의 목적은 이 모두가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이다.


영덕불교문화원장 서남사 주지 철학박사 현담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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