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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왕사 불적답사길 "구도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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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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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일에 내재(內齋)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工夫選)'을 마련하고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승려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主盟)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選席)을 열었다.

 

임금은 여러 군()과 양부(兩部)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그때 설산국사(雪山國師, 화엄종의 종사인 천희(千熙)스님을 말함)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 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 버렸다.

 

사나당(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혼수(幻庵混修) 스님이 오니 스님은 삼구(三句) 삼관(三關)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스님이 금경사(金經寺)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左街大師) 혜심(慧深)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은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入門) 등 삼구(三句)를 묻고, 다음에 공부십절(工夫十節)을 물으며, 나중에 삼관(三關)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않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天台宗)의 선사(禪師)인 신조(神照)를 시켜 공부십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知申使) 염흥방(廉興邦)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날 또 대언(代言) 김진(金鎭)을 보내 스님을 내정(內庭)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 드리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 보내셨다.

 

신해년(1371) 8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工部尙書) 장자온(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 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李士渭)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1373) 정월에는 서운산(瑞雲山), 길상산(吉祥山) 등의 산을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消災法會)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尹東明)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의 영골을 모신 땅이요.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23일에 임금(공민왕)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殯殿)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을 조정에 돌렸다. 우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周彦邦)을 보내 내향(內香)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보(印寶)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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