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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 해인사에 그려져 있는 벽화로 화면에 보이는 사진은 “태조 이성계와 나한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벽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성계는 명당 자리인 현재 함흥의 정릉에 아버지를 장사지내 모시고 무학대사에게 이상한 꿈의 해몽을 듣고 왕이 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후 무학대사께 스승의 예를 올리고 물러난 이성계는 기도 올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안변 땅에 절을 세우고는 후일 임금 왕 자를 해석했다 하여 「석왕사」라는 절을 짓고 오백 나한을 모시기 위해 석왕사 경내에 응진전을 건립하였습니다.
때마침 함경도 길주에 있는 광적사가 병화로 인해 패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광적사에 방치된 대장경일부와 오백 나한상을 석왕사로 옮겨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길주에서 원산포까지는 배로 옮겼으나 원산으로부터 석왕사까지는 이성계가 직접 돌로 된 무거운 나한상을 한 분씩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옮겨 모시었습니다.
오백이나 되는 나한상을 끝까지 한 분씩 잘 옮겨 모시어 498분을 옮기고 맨 마지막 두 분만이 남게 되자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어 두 분의 나한상을 한꺼번에 운반하여 모시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기도를 올린 후 살펴보니 간밤에 분명히 오백 나한을 다 모셨는데 나중에 모셔온 존상 한 분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이성계가 사방을 두루 찾아 보았으나 알 수가 없으므로 단념하고 있었더니 그날 밤 꿈 가운데 없어진 존상이 나타나서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그만큼 신심을 발하여 나한상을 하나씩 업어 오다가 나만은 따로 업어가지 않고 덧붙여 업어가니, 이런 푸대접 받기가 싫어서 나는 묘향산 비로암에 가 있으니 그리 알게.”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날이 밝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더니 과연 그곳에 나한상 한분이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성계가 곧 바로 가서 정중한 마음으로 다시 모시고 와서 참회하고 뉘우쳤으나 이튿날 보니 다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성계는 할 수 없이 없어진 그 나한존상 자리에 명패만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유로 석왕사의 오백 나한이 모셔진 응진전에 한 분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큰일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준 무학대사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긴 이성계는
오백 나한을 모시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 하여 3년에 걸쳐 오백 성재를 정성껏 올리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제일 먼저 신승을 찾아 왕사로 모시니 그 스님이 조선조 5백년 기반을 닦는 데 큰 도움을 준 무학대사였습니다.
오늘 준비한 사찰벽화는 해인사 대적광전에 그려진 “태조 이성계와 나한상” 이야기와 관련된 벽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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