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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폐사지 “영덕 남정면 쟁암 1리 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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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19.12.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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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불교 사찰 폐사지 영덕 남정면 쟁암 1리 절골


「영덕군향토사」의 기록을 보면 "남정면 쟁암 1리 마을 입구에서 서북 방향으로 계곡이 있는데 이곳을 절골이라 하며 옛날에 계곡에 웅장한 사찰이 있었던 절터가 현재에도 100평 정도 뚜렷이 남아 있음. 남정면 쟁암리 성터 옆 절벽산 기슭에 세워진 년도 미상이나 미륵과 암벽에 새겨진 불주가 있음. 또한 마을의 서남쪽 위에 절골이 있고 산기슭에 절터가 있으며 인근 경작지에서 부서진 기왓장이 출토되기도 한다”라고 되어 있다.


「영덕군지」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남정면 쟁암 1리 절골의 뒷산은 동대산으로서 등대산은 포항시와 죽장면과 접하고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91m이다. 경상북도 포항시와 영덕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쪽에 군립공원 내연산, 북쪽에 바데산과 팔각산, 서쪽에 국립공원 주왕산이 있다. 이웃한 산들의 명성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는 않지만,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상태를 간직하고 있다.


산줄기 서쪽의 지능선 들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상옥계곡과 하옥계곡으로 흘러들어 영덕군의 대서천으로 합쳐진다. 하옥계곡의 지류라고 할 수 있는 마실 골과 경방 골, 물침이골 등은 사람의 발 길이 많이 미치지 않은 청정계곡을 이루며, 경방골의 호박소는 산중호수를 연상하게 한다.


마실골에는 예전에 여러 집이 살았으나, 1968년 북한 무장군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남침한 1.21사태의 여파로 주민소거정책이 실시되어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산 아래쪽의 하옥계곡과 옥계계곡은 수량이 풍부하고 경관이 좋아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하옥리의 경방골과 마실골 또는 영덕군의 쟁암리와 회리 쪽을 이용한 산행코스가 있으며, 정상에 서면 주왕산의 봉우리들과 내연산의 산줄기들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쟁암리에서 산정에는 6.25 한국전쟁 때 돌로 쌓은 진보(鎭盤)가 있다. 여기 쟁암리 200고지에 옛날에 절터가 있었다. 주말이면 많은 등산객이 찾아온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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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록

남정면 쟁암 1리 절골은 마을 입구에 사는 김태석(49세) 거사님의 말씀을 듣고 찾아갈 수 있었다. 절터에 도착하기 전 풍광이 좋은 자리에 별장이 두 채가 있어 여기가 절터 자리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별장에 사는 분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자기들은 절터의 위치를 잘 모른다고 하였다.


다시 동네 입구로 내려와서 김상출(83세) 거사님을 모시고 절터 자리를 찾아갔는데, 1.5㎞ 정도에 있었다. 동네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절에 100여 명의 스님께서 사셨다고 한다. 이후 절이 폐사되기 전에 부처님을 보경사로 모시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나이 드신 동네 분들에게 들었다고 하였다. 또 별장 밑 논을 경작하면 기와가 나와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도 하였다. 또한 김상출 거사님께서 동네에서 2㎞ 정도 되는 부처담이라는 곳을 안내하여 주었다.


이러한 쟁암1리 절골을 답사하고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을 알게 되었다. 쟁암 1리 절터에 가기 전에 동네 입구 정자 밑 저수지 끝자락에 동네 미륵 부처님이 계시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다음날 미륵 부처님을 만나러 출발하였다. 쟁암1리 미륵 부처님은 성터 옆 절벽산 기슭에 모셔져 있었다. 상호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동네 입구라 하였지만 도로 밑 한참 아래에 있어 처음 이 동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미륵 부처님이 계시는 줄 잘 모를 것 같았다. 보이는 미륵 부처님 옆에 암벽에 새겨진 불화가 있어 언제 모셨는지 동네 분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다음에 불화나 조각 전문가를 모시고 연대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산하면서 쟁암의 동네 지명에 관한 내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남정면지」를 살펴보았다. 쟁암리의 연혁을 보니 “「삼국사기」나「고려사」 등의 역사책에서 우리 지역 야성군, 즉 오늘의 영덕군에 있었다는 재암성(載巖城)이 혹시 이곳에 있어 이로써 동리 이름이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재암성의 재암이 변하여 정암, 혹은 쟁암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 마을에서 전하는 이야기로는 1570년경 신씨(申氏)가 이곳에 정착,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마을 입구인 하류 약 1km 지점의 깊은 골 양측에 상투 모양의 바위와 탕건 모양의 바위가 서로 마주 보며 싸우는 형상을 보고 쟁바우(爭巖)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쟁바우’라는 기록을 보니 문득 원효선사의 ‘화쟁(和靜)사상’이 떠오른다. 불교에서 화(和)는 쟁(靜)에 반(反) 하는 말로서 신라의 고승 원효의 중심사상이다. 여러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 또는 교리적 쟁론의 조화를 말한다. 특정 종파를 고집하지 않고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결 시켜 자기 분열이 없는 불교의 사상체계를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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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폐사지 불적답사란?

영덕불교사암연합회 회장 현담스님의 도움으로 영덕 불교 폐사지를 시작하여 전국의 폐사지를 알려 무분별한 개발과 경작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의 규명도 없이 훼손, 멸실 되는 등 보호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폐사지의 현실을 알려 불자 모두가 폐사지 보호에 앞장서고 보전하는 일에 적극으로 동참하고 나섰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영덕불교 영덕사찰 체로금품” 내용 중 4부 “영덕 폐사지 불적 답사” 머리 중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현재의 모습을 후대인들에게 전하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모습을 통하여 현재를 조명하고 후대인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주어야 한다.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현존하는 사찰 외에도 적지 않은 사찰들이 중간에 폐사(廢寺)를 맞게 되었다. 폐사의 역사 또한 과거 자산으로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잔해마저 묻혀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통일신라 이후 창건되어 유지 폐사된 모든 불교 사찰의 현황을 파악하여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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