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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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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등록일
2022.07.11 09:49
조회수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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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만 볼 수 있는 반가사유상의 의자. 8엽의 연꽃이 

활짝 피어나 엎어진 모습이다. 보살의 허리에는 허리띠를 

둘러 하의를 고정하였다.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위 사진들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 전시중인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하 반가사유상)이다. 국보 제83호는 국보 제78호와 매우 흡사한 반가사유상으로 연꽃의자에 앉아 오른손을 오른발 무릎 위에 괴고, 괸손은 오른쪽 볼에 지긋이 댄채 가늘게 눈을 뜨고 입가에는 그윽한 미소를 머금은 채 명상에 잠겨있다. 이러한 모습은 두 반가사유상이 비슷하지만 국보 제83호는 보살의 몸에 걸친 옷이 완전히 몸에 밀착되어 옷을 입지 앉은 모습처럼 보이고, 머리에 쓴 삼산관(三山冠) 보관 형태 등이 국보 제78호 보다 훨씬 간략화되어 있어 확연히 다르다. 

 

윗몸에 걸친 옷은 몸의 윤곽이 다 드러난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매우 얇은 천상의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앉은 의자는 연꽃이 뒤집혀진 복련의 연잎이 바닥에 엎어진 모습으로 활짝 피어있고, 치마처럼 두른 하의가 보살의 다리를 감싸고 앞부분으로 흘러내린 옷주름은 복련의자를 감싸내리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국보 제78호와 흡사하지만, 그보다 더 세련된 모습이며, 머리의 뒷편에는 광배를 달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뾰족한 뿔이 나있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뒤 수많은 불상들과 보살상들이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청동을 주물주조기법으로 조성하면서도 이렇게 세련된 모습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오직 지금 보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 뿐이다. 이 반가사유상 또한 여러 부분으로 주물제작하여 붙여서 완성한 것이지만, 어디를 어떻게 붙였는지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알 수가 없다. 현대식 투과기법으로 조사하지 않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하다.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600년 즈음에 만들어진 한국의 미륵보살상으로 한국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여러차례 외국에도 홀로 나가 특별전시를 하였으며,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미륵보살반가상과는 거의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한 반가사유상이다. 다만 아쉽게도 일본 고류지(광륭사)에 있는 반가사유상은 백제에서 조성되어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메이지시대에 '일본인 얼굴로 성형 수술'이 되어 버려 쌍둥이 얼굴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연합뉴스 2009년 9월 18일 치 “일본국보 비밀캐는 이윤옥 교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밝혀진 것으로  "일본 여자미술대학 나가이 신이치 교수가 1976년 <역사공론> 6월호의 '아스카불(佛)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논문에서 일본 국보 1호인 고류지의 반가사유상의 얼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일본인이 만든 얼굴이라기보다 조선인의 얼굴이자 조선의 불상이다. (후에)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인의 얼굴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밝혔다.
 

한국의 국보 제83호인 반가사유상은 서양 조각가 로댕이 만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로댕의 작품이 근육질의 한 청년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걸터앉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에 찬 모습과는 달리 반가사유상은 매우 편안한 얼굴에 깊은 명상에 들어있는 번뇌를 초월하고 달관한 모습이어서, 그 예술적 아름다움은 로댕의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나다 할 것이다.  또 그동안 미륵신앙이 발달했던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자세의 반가사유상들이 다양한 크기와 재료로 만들어져 왔으나 한국의 국보 제83호 및 국보 제78호와 견줄만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한국은 이와같이 아름다운 반가사유상 2기를 보유한 것 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소』 조차 한국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에는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보인 2기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모두 600년대 작품이며 신라 또는 백제의 작품이라고 추정하지만, 당시 불교발달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신라보다는 백제에서 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위 2기의 반가사유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3층 특별실에서 함께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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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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